[마지막 광복군]"과거 잊으면 나라 또 잃을 수 있어"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 회장 인터뷰
  • 등록 2015-08-12 오전 6:30:00

    수정 2015-08-12 오전 9:15:01

서울 가락동 자택에서 만난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 회장은 “과거를 잊으면 나라 잃은 슬픔이 되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최선 기자]
[이데일리 최선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많은 행사가 열립니다. 나라를 되찾은 지 70년 만에 이룩한 산업화, 민주화는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광복 이전을 되돌아 보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아요. 우리가 어떻게 나라를 잃었고 어떻게 나라를 되찾았는지에 대한 과정은 빠진 채 광복 70주년만 기념하고 있는 겁니다. 과거를 잊으면 나라를 잃는 슬픔이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가락동 자택에서 만난 김영관(91) 전 광복군동지회 회장은 임시정부의 성과와 광복군 등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웠던 이들의 독립운동을 조명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임시정부가 탄생한 배경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해를 모르는 이들이 51%에 달하고 광복한 해가 1945년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29%라는 것은 그만큼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있지 못한 증거”라고 했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한국갤럽이 지난 2월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후손들이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성과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다”며 “광복군이 일본군과 직접적으로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뒷받침한 군사조직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일본군 강제 징병을 피하기 위해 징병연기가 가능한 교사의 길을 택했지만,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지 5개월만인 1944년 9월 징병통지서를 받았다.

김 지사를 태운 징병열차는 평양을 떠나 중국 저장성 둥양(東陽)으로 향했다. 둥양은 당시 중일전쟁의 최전선이었다. 징병열차를 타기 전부터 일본을 위해 총을 들 생각이 없던 김 지사는 한국인 동료들과 탈출할 계획을 짰고, ‘일본군 장교가 되라’는 설득을 받아들이는 척하며 일본군 간부들을 안심시켰다.

1944년 12월 3일 오후 6시. 김 지사는 지금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김 지사를 비롯한 한국인 동료 3명은 느슨해진 경계를 뚫고 막사를 빠져 나와 산과 계곡을 밤새도록 달렸다. 일본군에게 붙잡히면 현장에서 바로 총살이었다.

김영관 지사가 복무했던 광복군 부대 중 하나가 징모3분처다. 징모3분처 대원들이 구보를 하고 있다. [사진=독립기념관]
김 지사 일행은 이듬해 1월 강서성(江西省) 중국군 제3전구 사령부에 파견 나와 있던 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에 입대할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조국의 군대에 입대하는 순간이었다. 광복군 입대 후 김 지사는 3개월간 국내침투훈련을 받았다. 중국군과 함께 정보를 수집하고, 미군과 이를 공유하기도 했다.

“일본이 일찍 패망하면서 국내침투작전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어요. 김구 주석도 ‘수년 간 애를 써서 준비한 것이 다 허사가 됐다’고 애통해했습니다.”

김 지사는 “우리 민족이 전쟁을 통해 직접적인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지만 광복군이 아무런 투쟁 없이 가만히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직접 통솔했고 광복군은 임시정부를 뒷받침했다는 점 △일본에 대일선전 포고를 한 점 △일제 침탈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독립군을 광복군으로 단일화하고, 대한제국군-의병-독립군-광복군-국군으로 이어지는 군맥을 이었다는 점이 그가 꼽는 광복군의 주요 업적이다.

광복절 70주년을 맞는 김 지사의 마음은 편치 않다. 일부 보수 인사들이 이승만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삼아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어서다. 그는 “그날을 건국일로 삼으면 우리 민족이 해온 독립운동과 5000여년 역사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김 지사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삼자는 주장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후손들에게 일본의 이중성을 경계하고 역사인식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일본은 외국과 친선보다는 침략을 택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도 일본은 조선을 독립국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우리나라를 강탈했다”며 “최근에는 위안부 문제를 두고 사과한 것이 본 뜻이 아니라고 말을 바꾸기 까지 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미운 나라입니다. 하지만 협력하지 않을 수 없죠. 그래도 일본인들의 미소 속에는 비수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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