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표절파문②] 해법 없는 표절논란 어디로?

표절사태 일파만파
한국작가회의·문화연대 23일 긴급토론
"신경숙, 의식적이고 명백한 표절
메이저 눈치보는 출판상업주의
문단권력 과감한 자기성찰 필요"
신경숙 사과했으나 독자들 비난 여전
현택수 원장 "고발 취하 고려 안해
  • 등록 2015-06-24 오전 6:15:30

    수정 2015-06-24 오전 8:15:39

지난 2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뉴델리북페어’에 참석한 신경숙(왼쪽 두번째) 작가가 ‘한국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관련한 패널의 질문을 듣고 있다(사진=대한출판문화협회).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신경숙 작가의 표절사태가 일파만파다. 들끓는 여론에 신 작가와 창비가 공식사과까지 했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이번 사태는 숨겨왔던 한국문단의 치부를 그대로 노출한 채 전방위적으로 논란이 퍼지고 있다. 과거에는 표절논란이 제기되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명예훼손으로 맞대응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작가는 부인하고 해당 출판사 등이 적극 방어하며 유야무야하거나 결국 문제를 제기한 사람만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신도리코’ 신경숙, ‘표절과 두둔’ 창비의 오명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달랐다. 발단은 지난 16일 한 인터넷매체에 게재한 한 편의 글.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이 쓴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었다. 이후 인터넷블로그는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문단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신 작가에 대한 배신감과 창비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얹혀졌다. 특히 이 작가가 의혹을 제기한 신 작가의 단편 ‘전설’뿐만 아니라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단편 ‘작별인사’ 등도 추가 표절 의심을 샀다. 일각에서는 신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과거 표절의혹이 있었던 작품까지 덩달아 공개되면서 신 작가는 ‘신도리코’라는 혹평에 시달렸다. 복사기란 뜻이다. “몇몇 문장의 유사성으로만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는 황당한 변명을 내놨던 창비에는 ‘창작과 비평’ 대신 ‘표절과 두둔’으로 출판사명을 바꾸라는 독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더욱 귀추가 주목되는 건 이번 파문이 법정으로 가느냐의 여부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최근 “신 작가가 일본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해 창비를 속이고 인세를 부당하게 받았다”며 업무방해 및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현 원장은 23일 신 작가의 공식적인 사과에도 고발취하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상태. 이날 현 원장은 “사과가 아니었다. 표절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변명을 하는 느낌”이라며 “고발을 취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최악에는 과거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의 저서 ‘일본은 없다’처럼 법정에서 표절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물론 문단 내부는 반대론이 거세다. 고봉준 경희대 교수는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작가에게 ‘표절’이라는 판단 자체가 징벌적 성격을 갖는다”며 문단의 자성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숙 침묵 깨고 “표절 지적 맞다고 생각”

신 작가는 사태 발생 일주일여 만에 고개를 숙였다. 신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게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내 탓”이라며 “문제가 된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신 작가는 출판사와 상의해서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는 것은 물론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다만 문단 일각의 절필 요구에는 선을 그었다. 신 작가는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라며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독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인정했어야 했다”는 아쉬움부터 “개운치 못한 사과” “절필해야 한다” “유체이탈화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문단권력의 출판상업주의 과감한 자기 성찰 필요”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아쉬운 건 유명 문인들의 침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문제는 이 사태에서 쏙 빠져 있는 영향력 있는 문학인들의 침묵”이라며 “거대 메이저 출판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표절을 검증하고 문학권력을 감시해야 할 문학비평조차 찬사로 가득찬 ‘주례사 비평’으로 일관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문단은 창비를 비롯해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3개 출판사가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계에서 문단권력의 출판상업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신 작가는 이들 세 출판사를 번갈아가며 작품을 출판했다.

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연 긴급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출판상업주의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발제자로 나선 문학평론가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출판상업주의가 문단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되면서 작가들이 문학적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창비냐 문학동네냐 문학과지성사냐 같은 출판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나름의 색채를 가지려 했던 출판사들이 이제는 자본의 이익을 우선하는 양상”이라며 “게다가 한 작가가 문학적 지향과 상관없이 이들 출판사를 옮겨다니는 관행은 한국 출판상업주의의 현재를 가늠케 하는 슬픈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 관련기사 ◀
☞ [신경숙표절파문①] '문학의 별' 나락으로 떨어지다
☞ [신경숙표절파문③] 한국문단표절사…황석영·이인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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