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는 뭘 믿고 '죽을 때까지' 연금을 줄까

  • 등록 2012-08-23 오전 8:21:33

    수정 2012-08-23 오후 5:27:12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나는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어쩌면 나보다는 나에게 종신형 연금상품(사망할 때까지 매월 일정액을 연금으로 주는 상품)을 판매한 금융회사들이 더 알고 싶어하는 질문일 수 있다. 내가 예상보다 더 오래 살면서 매월 연금을 타면 그만큼 그 금융회사들의 장부에는 손실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즉시연금, 주택연금 등 종신형 연금상품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가입자들의 기대여명(가입자가 향후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햇수)이 상품 설계에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이 연금 상품을 설계할 때 적용하는 기대여명은 회사마다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가입자라도 회사마다 사망 시점을 다르게 추정한다는 얘기다. 가입자가 오래 살 것으로 예상하고 연금을 잘게 쪼개주는 회사는 기대여명을 짧게 예상하는 회사보다 가입자에게 나눠주는 월지급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

◇ 주택연금, 남자 기대여명은 81세

대표적인 종신형 연금상품인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역모기지론)은 통계청에서 매년 만드는 생명표를 근거로 연금액을 계산한다. 우리나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각 연령별로 그 나이에 사망할 확률을 표로 만든 것이다. 생명표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60세 남자는 평균 81세, 여성은 86세까지 생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60세인 남자가 집을 담보로 종신형 역모기지론을 신청하면 주택금융공사는 이 남자가 81세까지 사는 것으로 가정하고 집값을 매월 연금형태로 쪼개서 준다. 이 남자가 81세 이전에 사망하면 미처 다 받지 못한 돈은 가족들에게 나눠주지만 이 남자가 81세를 넘겨 90세까지 산다면 예상보다 더 생존한 9년간의 연금은 주택금융공사에서 손해를 보고 주는 셈이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예상보다 빨리 사망하면 남은 연금을 돌려주는데 반해 예상보다 오래 산다고 연금을 줄이거나 지급을 중단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주택연금은 늘 손실 위험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이 부분을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용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 종신형 연금, 남자 기대여명은 90세

그러나 같은 종신형 연금이라도 생명보험회사에서 주는 연금은 ‘가입자가 언제까지 생존할 지’에 대한 계산법이 다르다. 보험회사들은 통계청이 아닌 보험개발원이 보험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경험생명표를 기반으로 가입자의 기대여명을 계산한다. 한 보험사 상품개발실 관계자는 “보험개발원의 경험생명표에 각 보험회사들이 갖고 있는 자체 사망률 통계에다 혹시 가입자들이 예상보다 오래 살게 될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기대여명 할증률 등을 반영한다”면서 “그렇게 하고 나면 일반적인 기대여명보다 보험사들이 상품개발에 적용하는 기대여명은 훨씬 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생명보험사는 60세 남성은 90세까지, 60세 여성은 95세까지 생존한다고 계산해서 연금상품을 설계한다.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60세 남성은 87~90세까지 사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보험사의 종신형 연금상품에 가입한 60세 남성 가입자는 우리나라 평균인 81세보다 10년은 더 살아야 자기가 낸 돈을 겨우 연금으로 다 채워 받는 셈이 된다. 남성은 적어도 90세, 여성은 95세까지는 살아야 보험사와의 수명 맞추기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미처 못받은 연금을 가족에게 돌려주는 것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주택연금 역시 남성은 81세, 여성은 86세가 손익분기점이다.

보험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인 보험개발원의 경험생명표는 60세 남성이 그 해에 0.64%가 사망하고 65세에는 1.01%가 사망하는 것으로 가정한 반면 전국민을 모집단으로 한 통계청의 생명표는 60세 남성이 그 해에 0.95%가 사망하고 65세에는 1.39%가 사망하는 것으로 사망확률을 더 높게 예측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보험개발원에서 예상하는 기대여명이 통계청에서 예상하는 기대여명보다 약 7년 가량 더 길다. <자료 : 통계청, 보험개발원 2010년 60세 남성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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