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동안 가꾼 숲이 효자 됐다.. 힐링 핫플 된 '이곳'

■연속 기획-숲, 지역과 산촌을 살린다(14)
경북 김천 수도산 단지봉숲,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 선정
1918년부터 전국 최대규모 조림…낙엽송 등 700만본 식재
산림청, 경제림육성단지 지정 및 국립김천치유의숲 조성
인근 평촌산촌생태마을과 연계 상생·공존 위한 사업 성과
  • 등록 2024-10-22 오전 5:20:00

    수정 2024-10-22 오전 10:13:46

산과 숲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가치와 의미의 변화는 역사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한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렵고 힘든 50년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산림청으로 일원화된 정부의 국토녹화 정책은 영민하게 집행됐고 불과 반세기 만에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토녹화를 달성했다. 이제 진정한 산림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림을 자연인 동시에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본보는 지난해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을 탐방, 숲을 플랫폼으로 지역 관광자원, 산림문화자원, 레포츠까지 연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100회에 걸쳐 기획 보도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경북 김천의 단지봉에 위치한 국립김천치유의숲 내 자작나무숲 전경. (사진=국립김천치유의숲 제공)
[김천=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김천은 경상북도의 서북부에 위치해 있어 충북 영동으로 가는 추풍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는 통로로 과거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특히 김천은 원시에 가까운 천혜의 자연환경이 보전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백두대간 우두령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나며 수도지맥을 이루는 수도산(1317m)과 단지봉(1327m), 좌일곡령(1258m), 목통령(1010m), 두리봉(1135m) 등 높은 산에 에워싸여 있고, 수많은 골짜기에는 얘깃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다.

전북 무주군과 경북 김천시, 경남 거창군의 경계를 이뤄 제2의 삼도봉이라 불리는 초점산에서 분기하는 수도지맥은 수도산과 단지봉을 거쳐 경남 합천군의 성산을 지나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말정마을까지 잇는 106㎞ 구간의 산줄기를 말한다. 수도지맥의 중심인 단지봉은 일제강점기 시절 낙엽송 등이 집중 조림되면서 지금까지 그 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경북 김천의 단지봉에 위치한 국립김천치유의숲 내 낙엽송데크로드. (사진=국립김천치유의숲 제공)
1918년부터 전국 최대 규모 조림 시작…낙엽송·전나무·오동나무 등 700만그루 식재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나카가와 다이헤(中川太平)씨는 이 일대에서 조림사업을 주도했다. 나카가와 다이헤씨는 경남 양산에서 정비업을 하던 인물로 1912년 경북 김천에 정착했으며, 농업과 운수업으로 돈을 모아 수도지맥 일대의 국유림 4962㏊를 구입해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조림사업을 시작했다. 조림사업은 원황점 마을과 장전, 수도마을 사람까지 동원해 1918년부터 20년간 계속됐으며, 전나무와 낙엽송, 오동나무 등 700만그루를 넘게 심었다.

이 기간 동안 주민들은 1000m가 넘는 산을 헤집고 다니며 잡목을 베고 그 자리에 묘목을 심었지만 임금으로는 보리쌀과 밀가루 등을 겨우 연명할 만큼만 지급받았다. 전 재산을 조림사업에 투자한 나카가와 다이헤는 일제 패망이후 조선 귀화를 결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당시 조림한 낙엽송은 이후 민간에 불하돼 막대한 양이 전신주로 사용됐다.

경북 김천의 단지봉에 위치한 국립김천치유의숲 내 자작나무숲 전경. (사진=국립김천치유의숲 제공)
산림청, 1247㏊ 경제림육성단지로 지정…교육·학술연구 및 산림휴양 공간 활용

이후 산림청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와 황점리, 장전리 일대 1247㏊를 경제림육성단지로 지정, 본격적인 관리에 나섰다. 80년 이상 자란 낙엽송을 보존·관리해 교육·학술연구 및 산림휴양의 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맞춤형 낙엽송 특대경재 공급 기지를 조성, 경제림단지의 미래상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산림청의 구상이다. 낙엽송의 우리 이름은 잎갈나무로 한반도 남쪽에는 일본잎갈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에서 1904년부터 심기 시작한 일본잎갈나무, 즉 낙엽송은 2018년 기준 여의도 면적의 325배에 달하는 27만 2800㏊의 숲이 됐다. 우리 민족과 함께 일제강점기를 통과한 나무이자 한반도의 헐벗은 민둥산을 푸르게 변모시킨 장본인이 바로 낙엽송이다. 김천 단지봉 일대에 서식 중인 낙엽송은 대부분 80년 이상 자란 대경목이다.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든 10월에 방문한 단지봉숲은 낙엽송과 함께 자작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이 울창한 생태학습·체험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최근에는 김천 ‘모티길’이 유명해지면서 트레킹을 위해 찾는 방문객들이 늘고 있었다. ‘모티’는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로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산허리를 돌아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북 김천의 단지봉숲 내 계곡. (사진=박진환 기자)
수도산 청암사엔 장희빈에 밀린 인현왕후가 3년간 지낸 뒤 복위…인현왕후길로 재탄생

이 중 수도산 녹색숲 모티길은 단지봉과 수도산, 낙엽송보존림을 거쳐 황점리로 이어지는 15㎞ 구간이다. 수도산 자락에 터를 잡은 청암사는 헌안왕 3년(859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비구니 사찰이다. 1987년 승가대학이 만들어진 청암사는 배움의 글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경내 극락전은 조선조 숙종 시절 장희빈과 남인들에 밀린 인현왕후가 복위를 기원하며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궁궐로 다시 돌아간 인현왕후는 “큰스님 기도 덕분에 복위됐다’는 내용의 서찰을 보내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러한 인연에 착안해 수도리 마을과 용추폭포, 수도계곡 옛길을 둥글게 이어 5.8㎞ 구간의 산책길은 현재 ‘인현왕후길’로 불린다. 이 길을 따라 단지봉으로 향하면 한때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낙엽송이 군락을 이뤘던 곳을 만날 수 있었다.

국립김천치유의숲 내 치유놀이터를 찾은 유아들이 숲 놀이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국립김천치유의숲 제공)
2018년 국립김천치유의숲 조성…아이~노인 산림휴양·치유 등 산림복지서비스 제공

수령 80년생 낙엽송은 우뚝우뚝 옹골차게 들어서 있었고, 경제림단지에서는 23.04㎞의 임도를 통해 조림과 숲가꾸기 등의 사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2018년에는 국립김천치유의숲이 52㏊ 규모로 조성, 산림휴양 및 산림치유 등의 다양한 산림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나이에서 나무와 물, 바람을 다양하게 느끼며 치유를 누릴 수 있는 숲들이 조성돼 있다.

아름다운 자작나무가 있는 ‘힐링 숲’도 인기를 끌고 있다. 자작나무는 활엽수 중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어 삼림욕 효과가 크고 강력한 살균 효과로 아토피에도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김천 치유의 숲 내 자작나무 숲은 7㏊ 규모로 해발 고도가 800m 정도여서 인근 도심지역 보다 평균 기온이 5도 이상 낮아 자작나무의 식생에 적합한 기후여건을 가지고 있다.

이 숲에는 수령 25년 이상의 자작나무가 하늘을 가릴 만큼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하늘로 곧게 뻗은 하얀 빛깔의 자작나무를 올려다보니 외로운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아침에는 곳곳에서 다람쥐를 만날 수 있었고,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국립김천치유의숲 방문객들이 단지봉숲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사진=국립김천치유의숲 제공)
국립김천치유의숲 내 조림한 자작나무숲 보기 위해 방문객 급증…관광상품화 성공

김천 치유의 숲에서는 장애인, 고령자, 소외계층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고 보편적 산림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숲체험 교육사업 및 산림복지서비스 이용권(바우처)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치유의숲은 산림청 지정 국유림 명품숲, 한국관광공사 선정 웰니스 관광지, 경북도 선정 경북관광 100선 등에 지정돼 있다.

서상혁 국립김천치유의숲 센터장은 “전국에서 자작나무숲 등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늘고 있다”면서 “방문객 증가에 맞춰 지역주민들과 협업해 숙박과 식사 등을 제공, 지역과 새로운 산촌 상생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숲 치유 후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한 생리 측정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데이터화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천 평촌산촌생태마을 사무장 겸 산촌마을 운영매니저를 맡고 있는 서미경씨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평촌산촌생태마을 제공)
인근 평촌산촌생태마을 주민들과 연계한 상생·공존 위한 다양한 산촌활성화 사업 ‘성과’

수도산 단지봉숲 일대에서는 인근 산촌마을과 연계한 상생과 공존,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도 활개를 띄고 있다. 평촌산촌생태마을은 수도산에서 재배한 오미자와 콩을 주원료로 오미자청과 메주 등을 직접 생산·유통,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평촌산촌생태마을은 도심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그간 매우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마을 주민들은 지역에 위치한 치유의 숲과 휴양림, 무흘계곡, 인현왕후둘레길 등 산림자원을 관광자원을 만들자는 제안에 동의했고, 수도산과 반달곰 등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을 완성시켰다. 여기에 한국임업진흥원도 산촌활력특화사업을 통해 평촌산촌생태마을에 대한 지원에 나서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20여년전 가족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평촌으로 내려와 마을 사무장겸 산촌마을 운영매니저를 맡고 있는 서미경(48)씨는 “주민들이 모두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조합을 만들고 처음으로 샌드위치 피크닉 세트를 만들어 판매에 나섰다”며 “지역 행사와 트레킹 여행객 등 조금씩 판로를 넓혀 나갔고, 서사가 있고 귀여운 반달곰 ‘오삼이’ 캐릭터를 마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케팅에 조금 더 힘을 실으면서 소소한 부가수익을 올렸다”고 전했다.

그는 “관광객 입장에서 평촌산촌생태마을로 기억하기보다는 수도산, 오삼이가 뛰어놀던 마을로 기억할 수 있게 해서 소비도 촉진하고 충성도도 높일 수 있게 한 것이 포인트였다”며 “올해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면 내년에는 계절별 샌드위치를 추가 개발하고, 귀여운 오삼이 오미자청 선물세트와 굿즈를 김천과 대구까지 유통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10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민들이 직접 심고 가꾼 숲이 다시 주민들에게 또다른 희망을 선물하고 있는 현장을 보며, 나무와 숲, 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경북 김천의 단지봉숲에 조성된 트레킹 코스. (사진=박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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