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맘 다이어리] 12. 남편을 위한 변명

  • 등록 2015-03-22 오전 7:00:00

    수정 2015-10-22 오후 4:35:54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우리 집에는 아들만 둘이 있다. 사실상 세 명이란 얘기도 종종 듣는다. 주변에서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아들만…”이라며 아내를 위로한다.

퇴근해 현관 열기가 무섭게 놀아달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는 7살짜리 큰아들. 날렵하게 등에 올라타 ‘헤드락’을 건다. 그래도 이 녀석은 양반이다. 적어도 말은 통하니까.

손가락 하나와 울음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16개월짜리 둘째 아들, ‘수퍼갑(甲)’ 이 따로 없다. 너무 귀여운데 가끔 무섭다.

퇴근 직후 현관을 열었을 때 풍경이란 대개 장난감과 주방 용기, 책으로 아수라장이다. 아내는 “아빠 왔다”라며 아이들을 내 쪽으로 몬다. 회사에서 녹초가 된 날에는 들어왔던 현관으로 몸을 돌려 그대로 나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선배들이 주말에 왜 회사로 나왔는지 이해가 된다.

육아, 녹록지 않다. 청소, 빨래, 삼시세끼…. 1분 1초 허투루 쓸 시간이 없다(물론 아내가 훨씬 많은 일을 한다.)

빡빡한 일상만으로도 버거운데 돌발변수투성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가 그렇다. 이런 경우는 몸은 힘들어도 부부는 한마음이 된다. 새벽 2시에 응급실로 뛰어가 밤을 새우고 출근을 해도 피곤한 줄 모른다. “힘들지. 괜찮을 거야” 이런 위로로 서로 다독인다.

문제는 일상 속 소소한 엇박자다. 예상이나 기대와 어긋나는 일은 늘 분쟁의 씨앗이 된다. 예컨대 저녁 8시엔 온다던 아내(혹은 남편)가 10시가 넘어서도 들어오지 않을 때다. 그깟 한두 시간 못 기다리느냐는 얘기를 할 수도 있다. 8시까지 야근하면 되겠지 하며 버텼는데, 퇴근 5분 전 새로운 일거리를 주는 부장 앞에서 너그러울 수 있다면 말이다.

해야 할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기다리는 와중에 아이 목욕도 시키고 저녁을 먹이며 설거지까지 끝냈는데, 아내는 잠시만 아이와 놀라며 거실을 치우고 빨래를 널며 한두 시간 분주히 움직일 때도 비슷한 경우다. 아내도 힘들게 일하니 내 사정을 앞세울 수 없다. 불만을 꾹 누르다가 인내심이 바닥나면 욱하고 한마디 한다.

“그거 꼭 지금 해야 돼?. 내일 해도 되잖아” “난 하루 종일 애 보는데, 한 시간 더 보는 게 그렇게 힘들어” “그럼 난 회사에서 놀다 왔냐” 대개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진 뒤 대부분은 본전도 못 찾고 꼬릴 내린다.

엄마는 정말 힘들다. 출근한 뒤 집에서 사내아이 둘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아내의 힘들고 지친 표정만 봐도 미안하고 안쓰럽다. 퇴근 후 아내의 눈치도 보고 하라는 일 군말 없이 따르려 한다. 그렇지만 아빠의 삶이 덜 힘든 것은 아니다. 업무에 시달려 방전됐거나, 해야 할 일이 남았거나 간혹 몸이 아플 때도 있다.

대부분의 남자는 감정 표현에 서툴다. 그러다 보니 꾹 참는데 익숙하다. 나중에 아내와 얘길 해보면 “왜 그런 상황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냐”라고 한다. 인내가 아니라 미련하다는 거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은 아끼는 게 미덕이라고 배운 나로서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배운 대로 실천해도 타박 받는 세상이 됐다. 목소리가 컸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집에서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모든 아빠는 자상하게 아이들을 돌보면서 집안일도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한다. 안타깝지만 현실 속 아빠는 TV 속 슈퍼맨이 아니다. 아침밥은커녕 잠든 아이들 보며 허겁지겁 출근해 늦은 밤이 돼서야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버티기조차 쉽지 않은 고단한 인생이다. 아버지세대에게 물려받은 육아 노하우도 시대가 급변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육아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힘들어 죽겠어”라면서도 하나같이 구체적인 방법론은 “잘 모르겠다”로 귀결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편으로 아내가 부럽다. 엄마들은 처음 보는 사이끼리도 자연스럽게 육아정보를 나누고 스트레스도 날리는 신공을 갖춘 것 같아서다. 아내로서는 서툴고 성에 차지 않아도 남편들은 고군분투 중이다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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