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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김보겸 기자] 아아·꼰대가르송·이생망·믿거페·아이엠그루트….
신세대조차 다소 생소하게 느낄 법한 신조어들이었지만 추호성(38)의 답엔 막힘이 없었다. 불혹(不惑)을 앞둔 그였지만 무작위로 고른 신조어 13개 중 1개를 제외하곤 정확한 뜻풀이를 내놓았다.
평소 모르는 신조어가 등장할 때마다 틈틈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뜻을 익혔다는 추씨. 신세대들의 ‘핵인싸’ 용어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가 신조어 공부에 열심인 이유는 바로 ‘통역’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手語) 통역사인 그는 “방송에도 나오는 신조어를 제가 모르면 어떻게 수어로 통역을 해 줄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갖가지 핵인싸 용어를 수어로 전달해주는 남자, 서울 강동구 수어통역센터에서 추씨를 직접 만났다.
“뉴스보다 어려운 신조어”…표정과 몸짓으로 설명
신조어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TMI’(Too Much Information)였다.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역하던 때 갑자기 튀어나온 단어 뜻을 몰라 ‘버벅’댔다.
그 일을 겪은 뒤부터 신조어를 일부러 찾아보거나 기록해둔다. 댓글이나 웹툰, 온라인 커뮤니티도 일일이 찾아본다. 교회 중·고등부 교사인 추씨는 단어가 몸에 배도록 학생들과 신조어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신조어를 익히는 그만의 비결이다. 추씨는 “왜 이렇게 신조어는 매일 새로 나오는 것이냐”며 웃었다.
단어 공부가 끝은 아니다. 어떻게 통역해야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단어를 자음·모음으로 나눠 수어로 표현한 뒤, 표정과 몸짓 등을 동원해 의미를 설명한다. 표준어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배 이상은 필요하다. 추씨는 “뉴스보다 낯선 신조어 통역이 더 어렵다”고 혀를 내두른다.
신조어를 통역할 때면 표정과 몸짓도 과장한다. 뜻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역했을 당시 ‘롬곡옾눞’이 대표적이다. 폭풍눈물의 뜻을 가진 이 신조어를 설명하기 위해 얼굴은 있는 힘껏 구기고 손을 위에서 아래로 연신 흔들어대야 했다.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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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언어유희 느끼게 하고파…농아에 대한 관심 부탁
신조어 수어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뭘까. 농아들에게도 언어 유희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게 추씨의 대답이다. 신조어는 단어를 축약(ㅇㅈ:인정)하거나 모양을 변형(댕댕이:멍멍이)하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과거엔 온라인 공간 일부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는 이젠 예능프로그램 등 방송에서도 흔히 등장한다.
추씨는 “온라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들이 방송에서는 얼마나 재밌게 쓰이는지 알려주고 싶었다”며 “방송과 일상 속 언어유희에 농아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농아에게 1차 언어인 수어 통역으로 문맥과 상황, 단어 의미 등을 꼼꼼하게 전달해 청각 장애인들도 프로그램을 즐겁게 시청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그의 바람이다.
추씨는 마지막으로 청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기대했다.
“청각 장애인은 다른 시각·지체 장애인과 다르게 겉으로 봤을 때 비장애인과 다른 점이 없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되기 쉽죠.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다른 장애인과 마찬가지입니다. 농아에 대한 지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줬으면 바랄 게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