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애초 원전 해체 연구개발(R&D) 분야에 쓰려고 했던 예산조차 3년째 축소 편성되고 있을 정도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며 예산 투입도 계획에 못 미치는 모양새다.
글로벌 기준 현재 188기의 원전이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쌓은 경험으로 해외 원전 해체 시장을 선점하려 했던 기업들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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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자력계에 따르면 정부는 애초 2023년 428억원, 2024년 646억원, 2025년 524억원씩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2023년 337억원, 2024년 433억원이 집행됐다. 2025년 편성 금액도 483억원으로 40억원가량이 적게 편성됐다. 정부의 R&D 예산 감액 기조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시설 확보가 난항을 겪으며 해체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영향이 크다.
해체를 기다리는 188기의 원전 외에도 400여기의 원전이 운영되고 새롭게 50여기가 건설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수명이 다하는 40~60년 이후까지 수요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1960~1980년대 집중 건설된 원전에 대한 해체 수요는 2040년을 전후해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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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기업들도 이미 준비에 나섰다. 현대건설(000720)은 지난 2022년 신규 원전 건설 분야에서 협업 중이던 미국 원자력기업 홀텍과 원전 해체시장 진출을 위한 협약을 맺고 미국 등에서의 해체 사업에 공동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한수원 역시 지난달 25일 슬로바키아의 원전 해체 및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업인 야비스(JAVYS)와 해당 분야 상호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원전 주기기 제조사 두산에너빌리티(034020)도 국내외 신규 원전 건설과 함께 원전 해체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해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37개년에 걸쳐 고준위 방폐물 중간·최종저장시설을 마련하고 각 원전에 쌓인 사용후핵연료를 이곳으로 반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뒀지만, 부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절차를 담은 고준위 특별 법안은 2016년 이후 국회에 잡혀 있다.
이병식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경수로인) 고리 1호기는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로서, (중수로인) 월성 1호기는 세계 최초로 해체 기술을 선보이는 ‘퍼스트 무버’ 전략을 통해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을 선점할 기회”라며 “원전 해체를 제때 진행하려면 고준위 특별법 제정으로 임시저장시설 운영 기간을 명확히 해 지역 주민 수용성부터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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