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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서리들 사는 곳이 제상집 같아, 도서와 애완물이 방안에 가득, 어찌하여 취미로 풍속 옮기리. 모두가 유행 탓에 풍속 버렸다.”
조선 후기의 사대부 신위(1769~1845)는 말단 관리인 서리의 집마저 마치 재상의 저택처럼 각종 책과 골동품·서화가 가득차 있는 모습이 못마땅해 이를 꼬집는 글을 자신의 문집 ‘경수당전집’에 남겼다. 영조와 정조를 거치면서 조선 후기는 이른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며 사회 전체가 전환의 시기를 맞이했다. 특히 ‘사농공상’을 국가의 기틀로 삼았던 조선의 경제·사회구조가 상품경제의 발달과 도시화를 통해 흔들리면서 사대부를 중심으로 ‘절제와 검박의 미학’을 추구하던 조선의 미술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고관대작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한 중인계층까지 예술품을 향유하려는 욕구가 커졌고 실제로 주요 수요층으로 부상했다.
◇ 한국·일본·중국 등서 204건 373점 모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여는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전은 조선 후기부터 1930년대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의 도시의 발달, 이에 맞물린 다양한 예술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뿐만 아니라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해 독일의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일본의 국립역사민속박물관, 도쿄예술대 대학미술관, 중국의 랴오닝성박물관 등 국내외 약 25개 기관의 협조로 총 204건 373점을 내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19세기 작자미상의 ‘한성도’와 ‘수선전도’를 비롯해 겸재 정선이 소의문에서 바라본 한양을 그린 ‘소의문망도성’과 보물 제1394호인 ‘경기감영’ 등 한양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인구의 증가와 상업의 발달이 도시의 성장을 가져왔고 이에 따른 변화가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전시기획 의도를 알리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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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작품으로 추정하는 ‘연행도’나 표암 강세황이 그린 ‘영대기관첩’, 이성린이 18세기 중반에 그린 ‘사로승구도’는 당시 청나라로 연행사와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왔던 이들이 그린 작품으로 조선 후기의 미술변화에 일어난 단초를 설명한다. 연행사와 통신사를 수행하며 통역과 기록화 등을 담당했던 중인 신분의 수행관원들은 이국 땅을 밟으며 견문을 넓혔고 귀국할 때 가져온 외래문물을 국내에 유통해 부를 축적했다.
덕분에 수행관원을 중심으로 한 중인계층은 조선 후기 문화세력으로 급부상하며 예술가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이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미술사가들에 따르면 전시에 나온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과 김홍도의 ‘포의풍류’, 조희룡과 장승업의 ‘홍백매도’ 등 조선 후기 명작들은 사대부에 이어 미술애호가로 부상한 부유한 중인들의 소장 욕구가 없었더라면 후대에 온전히 전해지기 어려웠을 것이라 한다.
◇ 중국 1급 문화재 ‘청명상하도’와 ‘고소번화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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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중기 중국 강남의 번화한 도시풍경을 세밀하고 화려하게 담은 ‘청명상하도’와 청나라 건륭제 당시 항저우의 모습을 그린 ‘고소번화도’는 모두 길이 약 10m에 달하는 대작으로, 멀리서 봐도 놀랍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운 작품이다. 청나라 화가 서양이 3년간 그렸다는 ‘고소번화도’ 안에는 약 4800명이 등장한다. 이들이 가옥건축 2100여동, 교량 40여개, 배 300여척, 상가 50여동 사이사이에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 마치 기록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사실적이다. 작품 속에 보이는 도시의 활기차고 풍요로운 일상은 예술의 변화와 발달이 결국 인간생활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시를 기획한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미술을 제작하고 후원하는 이들이 중간층으로 확대되고 그들에 의해 더욱 풍요로운 문화가 꽃피웠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했다”며 “한국과 중국, 일본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도시라는 공간이 미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또 미술가들은 도시의 문화를 어떻게 바꿔놨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 ‘청명상하도’와 ‘고소번화도’는 이번 달 23일까지 진품을 공개하고 이후에는 모사품을 전시한다. 성인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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