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판결]"사선 넘어 찾아온 난민, 심사기회 막지 말라"

법무부의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남용에 경종 울린 법원
“인권국가의 국격을 위해서라도 난민법 문제점을 고쳐야”
  • 등록 2015-11-30 오전 7:00:00

    수정 2015-11-30 오전 7:00:00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동장군이 기세등등하던 지난 2월 18일. 아무리 추워도 영상 22도 아래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공화국에서 온 25세의 청년 A씨가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디뎠다. 도착의 기쁨도 잠시. A씨는 입국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인천공항 송환대기실로 옮겨졌다. 그는 “종교문제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출입국관리소)는 A씨의 기독교 개종과 관련된 진술이 신뢰성이 없고 강제송환을 피하기 위해 난민신청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렸다. 불회부 결정이란 난민인정심사 기회를 박탈하고 즉각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조치다. 근거는 난민법 시행령 제5조 1항 3호(거짓서류를 제출했다는 의심이 들 때)와 같은 항 7호(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였다.

A씨는 운이 좋았다. A씨는 난민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아 출입국관리소를 상대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입국한 지 약 3개월이 지난 5월초 소장을 접수됐고 4개월이 흐른 그해 9월 변론기일이 열렸다.

사건(2015구합51495)을 심리한 인천지법 행정1부(재판장 강석규)는 지난달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불회부 결정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는 난민협약 33조에 반할 뿐 아니라 A씨가 거짓서류를 제출했거나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을 신청했다는 증거를 출입국관리소가 제출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입국 8개월 만이다.

재판부는 “난민신청자에게 인정심사 결격 사유가 없음을 증명하라고 책임을 떠넘기면 정당한 난민 역시 심사기회도 얻지 못한 채 강제출국 당할 수 있다”며 “실제 라이베리아에서는 기독교 개종자들이 근본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박해를 받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 폭동이 일어나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날 같은 이유로 소송을 낸 세네갈인 B씨(26)에 대해서도 동일한 판결(2015구합51617)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2013년 7월부터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난민법을 따로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난민인정에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최근 OECD가 발간한 ‘2015 국제이주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대비 이민자 수 비중은 0.13%(2013년 기준)로 조사대상 22개 회원국 가운데 19위였다. OECD평균은 0.62%로 한국의 약 5배에 달한다.

‘서울변회와 이데일리가 뽑은 이달의 판결’ 선정 자문위원인 나현채 변호사(43·사법연수원 36기)는 “난민인정심사 회부 심사의 목적은 자격이 있는 난민과 그렇지 않은 난민을 신속히 가려내 심사 단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취지가 있다”며 “하지만 난민심사자체를 거부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판결은 난민심사를 받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불회부’ 결정이 심사 기회를 박탈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린 것에 의미가 있다”며 “난민협약에 가입한 인권국가인 한국의 국격을 위해서라도 법무부가 난민법의 문제점을 개선해달라는 취지로 이달의 판결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의 기다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출입국사무소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서울고법에 항소(2015누61698)했다. 항소심은 아직 기일도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겨울 한국 땅을 밟은 A씨는 인천국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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