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맘 다이어리] 9. 남편, 과연 아군인가 적군인가

  • 등록 2015-02-22 오전 9:00:00

    수정 2015-10-22 오후 4:34:08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애가 16개월 됐다고? 그럼 이제 막 기어다니겠네”

자식이 무려 4명이나 되는 선배가 내게 건넨 말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명도 아니고, 두명도 아니고 무려 넷이나 키운 아버지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었다. 16개월이면 걷고도 한참이나 지난 시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깥일만이 주된 임무인 아빠들에게 육아란 전적으로 엄마 몫이었다는 얘기다.

부모님 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실상은 더 적나라하다. 친정, 시댁 할 것 없이 아버지들은 기저귀 가는 법을 모르신다. 아기 기저귀가 축축해보이면 “기저귀 갈아줘라~” 한 마디면 끝이다. 어머니들은 다르다. 아기가 언제 배가 고픈지, 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척 보면 딱 나온다. 고수의 기운이 느껴진다.

워킹맘도 예외는 없다. 회사에서 아무리 도도한 커리어 우먼도 집에가면 팔 걷고 설거지하는 엄마다. 아버지는 똑같이 바깥일을 하면서도 집안일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게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고보면 부모님 세대 워킹맘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극한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한 셈이다.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아버지들은 참 많이 변했다. 아빠를 전면에 내세운 육아 프로그램은 이제 식상해질 정도고, 키즈카페에 가도 엄마 없이 아기와 아빠만 온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실제 육아박람회나 백화점에 가도 아빠들이 더 관심있게 참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야말로 한 세대 사이 아버지의 육아 참여도가 극과 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젊은 아들을 둔 부모님 세대의 반응 역시 제각각이다. 남자가 애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다며 혀를 차는 어르신과 시대의 변화를 응원하는 어르신들이 공존한다.

이처럼 과도기적 상황에 살다보니 나는 오히려 남편과의 다툼이 더 많아졌다. 내 기대치와 남편의 기대치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기저귀 갈고 분유타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남편에게 육아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아버지를 강요하니 싸움이 안날 수가 있나. 내게 육아휴직은 지난한 싸움의 기간이었다.

내 입장에서만 얘기하자면 내 직업은 기자에서 엄마로 바뀌었을 뿐 청소, 빨래 등 가사는 신혼 때와 마찬가지로 공동 분담하는게 당연했다. 게다가 직장생활은 출퇴근 시간이라도 정해져있지 엄마는 24시간 근무체제다. 새벽에 울어대는 애랑 씨름하다보면 아침이 와도 비몽사몽일 때가 부지기수다. 그런 내게 하루 종일 나가서 가벼운 몸으로 돌아다닌 남편이 퇴근 후 단 몇 시간만이라도 휴식을 줬으면 했다. 주말에는 남편이 평소보다 더 육아에 참여하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남편은 내가 집에 있으니 육아와 가사 모두 내가 분담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퇴근 후에는 아기와 잠깐 놀아주다 쉬기 바빴다. 주말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중에는 애보느라 체력적으로 지치고, 주말에는 내 기대치만큼 행동해주지 않는 남편과 싸우느라 감정노동까지 더해져 말로만 듣던 산후우울증이 찾아왔다. 어디론가 도망가고만 싶었다. 주변에 누구라도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보기라도 하면 감정은 더 격해졌다. 남편이 과연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렸다. 차라리 감정노동이 없는 주중이 더 좋았다.

우리의 싸움은 아기가 돌이 지나고 내가 복직을 한 뒤에야 잦아들었다. 내가 늦을때면 혼자 아기를 보던 남편은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걸 몸소 느꼈고, 나또한 퇴근 후 쉬고만 싶은 심정을 알 수 있었다. 엄마만 찾던 아기도 어느새부턴가 아빠를 더 잘 따라다니고 있다.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니 부부사이도 육아도 더 즐거워졌다. 남성에게 단 몇 달만이라도 육아휴직이 보편화되는 시대가 온다면 갈등은 더 적어지리라 믿는다. 워킹맘만 있고 ‘워킹파’는 없는 이 사회가 조금 더 변하길 기대해본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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