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에 한 사람 운명이"… '국민 배심원' 불꽃 튄 법정 공방

'일일 판사' 배심원 8명…재판 과정 한눈에
오전에 시작해 밤늦게 종료…줄곧 초집중
직접 피의자에 질문하고 중요한 부분 메모
배심원단, 피고인 특수상해 '무죄'로 판단
  • 등록 2023-10-20 오전 6:00:00

    수정 2023-10-20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오토바이가 보행자에게 심리적으로 위협이 되는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하나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도 똑같이 행동할 건가요?”

지난 17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 406호 대법정. 피고인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사람은 ‘일일 판사’로 나선 배심원이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는 배심원 7명과 예비 배심원 1명이 법대 좌측에 두 줄로 나란히 앉았다. 방청석에는 기자를 포함한 12명의 그림자 배심원이 국민참여재판 전반을 지켜봤다.

국민참여재판법정 사진(사진=서울남부지방법원)
이날 피고인은 특수상해 및 모욕 혐의로 기소된 박모(38)씨. 박씨는 자신이 사는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이를 제지하던 이웃 주민인 피해자 공모(56)씨를 오토바이로 치고, 욕설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주요 쟁점은 박씨의 오토바이가 실제로 피해자를 충격했는지와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피고인에게 적용된 특수상해는 위험한 물건으로 사람을 다치게 할 때 성립되는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량이 무거운 편이다. 판사가 “특수상해가 인정될 경우 피고인은 오늘 구속된다”고 말할 때는 장내에 긴장감이 흘렀다. 박씨 측 변호인은 특수상해와 모욕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재판 시작에 앞서 판사는 “배심원 여러분이 혹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이 사건에서 보이는 증거 서류와 증언에 따라 사실 판단을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검찰 측과 박씨 측은 쟁점이 될 수 있는 법리들과 증거자료를 프레젠테이션(PPT)으로 설명하며 불꽃 튀는 공박을 벌였다. 검찰 측은 피고인이 폭력 및 교통사고 전력이 다수 있음을 부각하는 한편 엄벌을 호소하는 피해자 아내의 탄원서를 증거서류로 제출했다. 박씨 측은 피해자가 오토바이 앞으로 뛰어들자 두 차례 브레이크를 밟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재생하며 고의성이 없었음을 강조했다.

배심원들은 자신들의 판단에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만큼,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안경을 고쳐 쓰는가 하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필기했다. 피고인 신문이 진행될 때는 박씨의 표정 변화까지 포착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유심히 관찰했다. 지친 기색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10시간 가까이 이어진 재판 끝에 배심원단은 특수상해는 무죄, 모욕죄는 유죄로 보고 150만원 벌금형 선고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도 이를 존중해 동일한 판결을 내렸다. 이날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은 국민참여재판에 대체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30대 여성 김모씨는 “재판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사실 재판에 들어오기 전에는 피해자의 입장에 마음이 치우칠 줄 알았는데 증거물에 입각해 의견을 정하다 보니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조모씨는 “법정 용어에 대해 설명을 잘 해주셔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며 “법원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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