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욱의 이슈Law]피의사실 공표, 인권과 수사외압 사이

  • 등록 2019-10-18 오전 5:00:00

    수정 2019-10-18 오전 5:00:00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계약체결 대가 거액 주고받은 주택조합장 구속”, “학생들이 낸 보증금으로 카지노·호화생활 원룸 사기범 구속”, “여성 장애인 성추행 콜택시 운전사 구속”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관련자가 구속됐다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정치인이나 재벌쯤이 아니면 이후 그 사람이 실제 형사 공판에서 유죄를 받았는지, 무죄로 풀려났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피의자가 구속된다는 것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일뿐 죄가 확정된 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선 누군가 구속되거나 기소되면 이미 죄가 확정된 것처럼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경향이 있다.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구속이나 기소가 되면 유죄가 추정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형사재판에서 적용법조나 형량이 변경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상당수라 이는 잘못된 관행이라 볼 수 있다.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봐도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구속상태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 중 1827명이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지목 등으로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커졌고 그 결론은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금지하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사실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피의자의 인권, 인격권, 명예 침해 방지를 위해 피의사실 공표죄(형법 제126조)는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도입됐지만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검사 기소 전에 이뤄지는 모든 수사결과 발표나 공식 브리핑은 법 위반이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이뤄지는 수사 브리핑도 모두 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계를 살펴보면 피의사실 공표죄는 사실상 없는 죄나 마찬가지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피의사실 공표죄로 접수된 347건 중 기소된 건은 단 한 건도 없다.

다만 피의자 신분이나 범죄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다면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재벌에 면죄부를 주는 것일 수 있다. 최근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발표했다. 종전엔 범죄로 인한 피해 확산 또는 동종 범죄 발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공공 안전과 관련해 국민이 즉시 알 필요가 있는 경우, 범인 검거나 중요 증거 발견을 위해 국민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엔 기소 전이라도 예외적으로 수사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번 개정안은 사건관계인 또는 수사관계자의 명예와 인권을 침해하는 등의 중대한 오보가 실재해 신속하게 그 진상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그 진위여부를 밝히는 범위 내에서만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존엔 고위 공직자, 정당 대표자 등 공적 인물이나 수사사건 관련해 언론에 실명이 공개돼 대중에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실명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번 개정안은 예외적 실명 공개 조항을 완전히 삭제했다.

이렇다면 살아 있는 정치·경제 권력을 견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여러 외압으로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수사가 어려울 때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국민여론으로 수사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 고려도 필요하다.

피의사실 공표로 인해 피해 본 사람들이 대한민국, 수사담당자, 언론사 등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례는 있는데 대법원도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해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는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 결국 무조건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기보단 약자 위치인 일반 국민이나 범죄 경중이 낮은 사건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는 엄격히 제한하되 유력 정치인이나 재벌, 중대 범죄에서 범인 검거, 증거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경우엔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적으로나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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