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벼랑 끝 쌍용차 해고자들 옥죄는 `산재보험`

  • 등록 2012-07-09 오전 7:50:38

    수정 2012-07-09 오전 7:50:38

[이데일리 정병준 기자] 근로복지공단이 쌍용자동차(003620) 해고자와 정직자 57명에게 3억4300만원의 산재보험 구상금을 청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무급휴직자들의 복직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공단이 시름에 빠져있는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결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는 최근 지난 2009년 77일간의 쌍용차 옥쇄파업 기간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해고자와 정직자에 대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파업 기간 중 노조원과 충돌했던 회사 직원과 용역 경비업체 직원에게 지급한 치료비 3억4293만4320원을 해고자와 정직자에 요구한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로 근로복지공단이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 공단이 그 금액에 대한 손해배상을 제3자로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이에 공단은 산재를 입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가해한 사실이 확인된 조합원과 노조파업을 지휘한 당시 노조 집행간부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단은 법에 따라 내린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쌍용차 해고자나 정직자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측면에서 비난 섞인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감성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며 “업무상 규정에 따를 뿐 과거에도 예외사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단의 이번 결정은 법을 빌미로 해고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는 “용역깡패의 폭력성과 공권력의 잔인함은 덮어둔 채 노동자들의 폭력성만을 부각시키고 있다”며 구상금 청구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산재보험은 급격히 증가하는 산업 재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 1964년 도입된 첫 사회보험제도다. 그러나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 산재승인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 산재보험 제도의 ‘업무상 질병’ 관련 입증 책임과 구체적인 인정 기준 등을 개선할 것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한 바 있다.

생존권이 걸린 지루한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어 보인다. 공단측에 따르면 소송 과정에서 과실비율 부분이 조정되면 구상권 청구 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면죄부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 시점에서 산재보험이 누구를 위해 도입된 제도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단 설립 목적이 명칭대로 ‘근로복지’일진대 ‘복지’는 없고 ‘제재’만 있다면 참으로 서글픈 현실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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