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들고 쳇바퀴 도는 현대인의 자화상…짐 아비뇽의 풍자와 재치

'짐 아비뇽: 21세기 스마일'
신작 등 원화 150여 점 선보여
"캐릭터의 행동·표정 속 메시지 찾아보길"
9월 1일까지 강동아트센터 아트랑
  • 등록 2024-06-11 오전 5:30:00

    수정 2024-06-11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989년 11월 9일, 40여km에 달하는 ‘베를린 장벽’이 시민들에 의해 허물어진 것은 역사적인 일이었다.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었던 독일은 이날을 기점으로 통일독일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은 대부분 철거됐고, 몇 군데만 일부 남았다. 1990년 21개국에서 모인 118명의 작가는 베를린 장벽의 잔재에 그림을 그렸다. 현재까지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명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의 탄생이다. 스무 살의 짐 아비뇽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프로젝트에서 ‘이스트 사이드를 위해 멋지게 그려라’(Doin’ it cool for the East Side)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베를린 장벽 벽화 화가’ ‘미술계의 록스타’ 등으로 불리는 독일 출신의 작가 짐 아비뇽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다. 오는 9월 1일까지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 아트랑에서 열리는 ‘짐 아비뇽: 21세기 스마일’ 전에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100여 점을 포함한 원화 150여 점을 선보인다.

짐 아비뇽은 “예술은 사람들이 자신과 주변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영감을 준다”며 “나의 예술은 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질문에 관한 것이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의 팝 아티스트 ‘짐 아비뇽’(사진=UNC갤러리).
짐 아비뇽은 독일의 대표적인 1세대 팝 아티스트이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사건들을 팝아트와 결합해 기발하고 유쾌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스스로를 ‘낙관주의자’이자, 세상에서 제일 빠르게 그리는 화가라고 자부하는 그는 어떠한 순간에도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대담한 스케치로 시끌벅적한 도시의 낮과 밤, 빠르게 디지털화된 세상의 빛과 그림자 등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의 작품에는 다채로운 색채와 만화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디지털 곡예사’(Digital acrobats)에서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한 남성의 등에 올라타 채찍으로 조련하고 있는 핸드폰이 눈길을 끈다. 마치 어두운 서커스의 한 장면 같다. 오른쪽에는 어두운 표정으로 넥타이를 잡힌 채 핸드폰에 의해 끌려가는 남성도 나온다. 정새라 큐레이터는 “오늘날 핸드폰에 얽매여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짐 아비뇽의 ‘City of Easy’(사진=UNC갤러리).
‘일하는 몸’(Body of work)에서도 현대사회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내일의 걱정들’(All tomorrows problems)이라고 적힌 가방을 들고 러닝머신 위를 걸어가고 있는 남성의 두 다리에는 ‘후퇴’(REGRESS)와 ‘진보’(PROGRESS)가 각각 쓰여 있다. 마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더 나은 당신이 될 수 있다’고 채찍질하는 핸드폰, 새장에 갇힌 마음 등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과 같다.

정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21세기를 유쾌하게 바라보는 짐 아비뇽의 시선을 통해 디지털 혁명과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탐구하고자 했다”며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각 캐릭터의 행동과 표정, 배경 속에서 작가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아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짐 아비뇽의 ‘Easy City’(사진=UNC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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