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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용 참기름 전문가. 쿠엔즈버킷 대표] 기계가 없던 옛날에는 참기름과 들기름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조선시대 요리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서 참기름은 급취마유법 (急取麻油法)으로, 들기름은 급취임자유법(急取荏子油法)으로 각각 제조법을 소개하고 있다.
“참깨를 먼저 볶는다. 알맞게 볶아지면 가루를 낼 정도로 잘게 빻는다. 이것을 끓는 물에 넣고 한참을 둔다. 이 때 떠오른 기름을 숟가락으로 건져내어 다른 그릇으로 옮긴 다음, 다른 그릇의 물이 다 증발할 만큼 끓여내면 기름만 남는다”라고 설명한다.
문헌에서는 또 다른 방식도 소개했다. “참깨를 조금만 볶아 가루로 만든다. 가루를 보시기에 담아 물 조금 치고 밥솥에 잠깐 찌다가 꺼내어 보면 기름이 물 위에 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때 기름만 다른 그릇에 건져서 졸이면 한 끼 손님 반찬에 족히 쓸 만한 양이 나온다. 기름집에서 짜는 기름보다 맛이 갑절 좋다”고 했다. 참깨를 조금만 볶는 방식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아직도 끓인 물을 사용하고 있다. 먼저 참깨를 볶은 다음 가루로 낸다. 그리고 끓는 물에 담궈 두면 기름이 분리되는 방식 그대로다. 그런데 물을 증발시키고 기름을 얻기 위해 가해지는 열은 100도를 넘게 되어 기름에 영향을 미친다. 한 일본 업체에서는 물이 완전히 증발하는 온도가 참기름내의 항산화제를 깨뜨릴 온도에 가깝기 때문에 이보다 온도가 높아지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곳도 있다.
일본의 일부 업체에서는 참기름에서 침전물을 분리하기 위한 용도로 뜨거운 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착유된 참기름은 원래 침전물과 기름이 섞여 있는 상태로 나오게 된다. 이를 통 안에 담아 오랜동안 그대로 두면 침전물이 가라앉고, 침전물 없는 기름이 상층부에 모인다.
간혹 참깨를 볶지 않고 증기에 찐 다음 짜는 경우도 있다. 증기에 찌는 동안 수분이 참깨 속 섬유질로 흡수되어 들어가면서 참깨 껍질 안에서 지방이 이미 분리된 상태가 된다. 이를 착유기에 넣게 되면 적은 압력으로 손쉽게 기름이 짜진다. 아무래도 수분이 같이 섞여 나오다 보니 기름양도 많아진다.
끓인 물을 이용한 참기름 제조법은 기계 없이도 기름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면서 높지 않은 온도를 사용하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다만 기름에서 수분증발을 위해 가열하는 과정상의 가열판에 접촉하는 유지 산화 발생 위험성이 있고 유지안에 수분의 잔존량에 따른 이취 발생과 산패도 촉진으로 인해 보존기한을 오래 가져갈 수 없는 점은 단점이다. 하지만 오래 두고 먹을 기름이 아니라면 시도해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