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해외금리연계 DLF 사태의 교훈

  • 등록 2019-10-29 오전 5:00:00

    수정 2019-10-29 오전 5:00:00

[박래수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올해 초 두 시중은행을 통해 판매된 독일, 영국 및 미국 등 주요국 해외금리와 연계한 DLF(Derivatives Linked Funds) 상품(이하 DLF)으로 인한 손실발생으로 그렇잖아도 어지러운 나라 안이 더욱 어수선하다. 지난 2일 금융감독원의 중간검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올해
9월말 기준으로 DLF에 투자된 금액은 총 7950억 원 규모이며 이중 중도환매 및 만기상환으로 손실이 확정된 금액은 669억 원이고 아직 만기도래하지 않았지만 계약상 손실구간 진입으로 향후 예상되는 손실액은 3513억 원으로 손실률은 투자금액의 절반이 넘는 52.6%로 추정된다.

일찍이 국내 수출기업들에 환헤지 상품으로 소개되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발생한 키코(KIKO) 사태 때에는 금융감독원 추산으로 3조2000억원이라는 엄청난 피해액이 발생하였다. 이때에는 불완전판매 이슈 외에도 금융능력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는 수출제조기업과 금융기관 간 거래로 인한 거래의 공정성 및 환위험 헤징 유효성 등이 논란되었다. 이로 인해 2008년 12월부터 시작된 키코 관련 100여개의 소송들은 2013년 대법원판결까지 지루한 공방을 이어갔는데, 일부 사건에 대해서만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 또는 적합성 원칙위반이 인정돼 손해배상책임을 물었을 뿐 대부분의 소송에서는 피해기업인 원고의 패소로 결정 났다. 키코 사태는 여태 논란이 마무리 되지 않은 사안이긴 하지만, 이후 장외파생상품거래 시 투자자에 따라 거래를 제한하는 등 투자권유 규제를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주가연계형상품(ELS) 파동의 경우도 일반 금융상품과 달리 수익구조가 복잡하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존재한데다가 일반투자자의 경우 상품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이어서 주로 투자권유인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현재의 DLF 사태와 맥락이 매우 비슷하다. 당시에도 특정 금융투자회사가 상품구조를 이해하기 힘든 고령의 은퇴자에게 원금보장형 ELS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손실 가능성과 최대손실금액을 알려주지 않아 불완전판매가 이슈가 되었고, 이후 파생결합증권 상품 위험분류기준을 점검하고 판매인의 상품 숙지의무(Know-Your-Product) 도입 및 설명의무 내실화 등 투자자보호를 강화하는 또 다른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앞서 발생한 비슷한 복합금융상품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사례와 그에 따른 규제대책 강화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DLF 사태가 다시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무엇보다 복합금융상품을 다루는 금융기관의 무능과 과욕을 들 수 있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어온 저금리시대로 인해 수익성 저하에 시달려온 국내은행들은 비 이자수익의 증진에서 그 활로를 찾고자하였고 충분한 준비나 능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로 다양한 복합금융상품을 취급해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F 상품의 설계 및 판매과정에서 해당상품을 투자자에게 판매한 시중은행들이 관련위험을 적절히 평가하고 관련정보를 투자자에게 충분히 알렸는지는 심히 의심된다. 관련 상품 출시단계부터 내부상품선정위원회의 승인규정 등도 대부분 무시되고, 자체 리스크 분석도 없이 자산운용사의 엉터리 백테스트 결과만 믿고 투자자들에게 원금손실이 없는 고수익상품이라고 버젓이 소개한데다, 실제로 기초자산인 주요국의 채권금리가 하락하여 손실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상품구조를 바꿔가며 신규상품판매를 지속한 것은 정상적인 금융 서비스 제공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거기에 저성장과 저금리로 인해 낮은 예금금리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 역시 전통적인 펀드상품 등에 만족 못하고 감당하기 힘든 고수익금융상품을 찾는 상황에서 이번 DLF 사태는 두 당사자의 어설픈 이해가 맞닿은 뻔한 삼류소설의 불륜시나리오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에 문제가 된 DLF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현 시점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 있을까. 그간 키코 사태 및 ELS 파동 시 대응방안으로 제시되었던 투자권유규제의 강화, 숙려기간제 도입 및 사후관리 강화, 금융상품정보 비교제공 등의 기존 대응책 등은 여기서 논외로 하자.

우선 현재 문제시되는 불완전판매 등과 같은 약탈적 금융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개별금융기관들의 핵심성과지표(KPI)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 은행은 임직원들에 대한 비 이자수익은 여타은행들에 비해 2~7배 정도 높게 부여한데 비해 소비자보호 등에 대해서는 매우 낮게 배점하였다. 은행의 비 이자수익제고의 목표지향과 임직원들의 개인고과에 대한 과욕이 정보비대칭에 있는 금융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될 필연적인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합리적인 인센티브 구조가 형식적인 투자권유규제 앞서 임직원들의 정상적인 금융 서비스제공의 필요조건으로 이해된다.

또한 금융기관 내부의 리스크 통제 역량을 강화해야할 것이다. 상품설계 및 판매과정 전반에 걸쳐 기본적으로 내부통제기제가 제대로 작동해야하며, 관련위험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측정과 통제가 필수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일부 시중은행에서 내부통제장치로서 백오피스와 프론트오피스의 분리라는 기본이 소위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무시된 점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제에 ELS, DLF와 같은 복잡한 소매금융상품을 은행판매채널을 통해 관련정보에 어두운 투자자들에게 무한 공급하는 게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에도 답해야할 것이다. 수익구조가 복잡하고 손실위험이 큰 복합금융상품일수록 내재된 수수료가 높은 금융환경에서 주로 예·적금 등 안정성을 추구하는 고객을 취급하는 은행이 금융자산이 많은 고령자·은퇴자를 대상으로 수익구조를 이해하기 어렵고 손실 발생 시 규모도 큰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위험을 야기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F 싱품의 경우에도 위험부담에 따른 수익의 절반 이상이 투자자가 아닌 관련금융기관들의 수수료로 배정되도록 설계된 것은 실제손실의 발생여부를 떠나 약탈적 금융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벨기에나 노르웨이에서는 수익구조가 복잡해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의 경우 아예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사례도 참조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향후 엄격한 기관책임을 묻는 게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불완전판매는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초래하는 한편 금융투자업의 근간인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그 부작용이 매우 심각하다. 앞서 논의한 키코 사태나 ELS 파동 등 그간 몇 차례의 위기를 겪었으면서 이번에도 비슷한 불행이 이어지는 것은 사후적인 처벌이 미흡했던 탓도 크다. 현재 강화된 자본시장법에서도 설명의무 불이행에 대해서만 별도의 손해배상책임을 명시하고 있을 뿐 여타 불완전판매에 대한 별도의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금융투자업자가 투자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충분히 주지 않고 손해를 입힌 경우 신인의무를 위반하거나, 고객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금융기관을 징계해 왔다. 그리고 영국의 경우 ‘광고’와 ‘권유’를 동일한 금융판매 권유행위로 간주하여 피해자를 구제하고 있음도 국내에서 불완전판매를 근절할 유효수단으로 참조할 만하다.

본 저자가 이해하기로 소위 금융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우리 보다 더 일찍 수많은 위기와 역경을 겪었으며 이를 극복한 경험이 지금의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다. 우리 역시 거듭된 위기와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향후 발전과 진보에 대한 희망은 요원할 것이다. 이제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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