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모로코)=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세계은행(WB)이 글로벌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RISE) 출범과 관련해 한국 취재진과 만나려던 계획을 행사 10분 전에 돌연 취소했다. 일본에서 RISE를 두고 ‘공급망 탈(脫)중국’ 보도가 나오자, 언론 인터뷰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데메트리오스 파파타나시우 WB RISE 담당 국장은 11일(현지시간) 오후 6시 WB 연차총회가 열리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현장을 찾은 한국 언론사들과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행사를 앞두고 갑자기 ‘취소’를 통보하더니, 결국 행사 종료 시각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WB로서는 RISE가 돛을 올린 시점에 그 취지와 효과 등에 대해 홍보할 수 있는 자리였다. 게다가 당일 오전 WB 측에서는 이미 인터뷰가 이뤄질 장소를 방문해 사전 점검까지 마친 상태였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행사 준비를 위해 지난 몇 주간 일정 조율부터 장소 섭외, 예상질의 등의 업무를 도맡았던 정부 관계자도 일방적인 행사 취소 통보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국제 관례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WB의 이례적인 취소 결정은 RISE를 중국 견제용으로 명시한 일본 닛케이 신문 보도에서 비롯했다고 알려졌다. 닛케이 신문은 이날 “RISE는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자원에 대해서는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보도했다.
과거 WB는 다자신탁기금으로 핵심 광물을 보유한 개발도상국의 채굴을 지원했다. RISE는 그 이후 가공·정련 과정을 추가 지원해 ‘특정국’에 집중된 공급망을 다각화하자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특정국은 중국을 일컫는 외교적 수사에 가깝다. 희토류·리튬 등 주요 핵심광물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일본 중심의 국제 협력은 중국의 이익과 배치될 수밖에 없어서다.
WB 측은 한국 기자들이 보낸 사전 질의에 ‘지정학적 이슈’라는 이유로 답변이 곤란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인터뷰가 파행된 후에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 때문이었다”며 유감을 표했다. 신냉전으로 비화되는 미-중 경쟁도, 중국이 독점적 지위를 형성한 시장 구조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RISE의 탄생 비화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별다른 설명조차 없이 ‘노쇼’(No-Show, 예약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 것)를 보여준 WB의 대응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 IMF·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리는 모로코 마라케시의 회의장 앞에 참가국 국기가 걸려 있다.(사진=마라케시 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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