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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민 기자] 서울시가 최근 재건축 시장을 압박하기 위해 꺼내 든 ‘이주 시기 조정’(관리처분계획 인가 조정) 카드가 전세 보증금 미상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종전 전세계약이 만료된 세대는 집주인(조합원)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재건축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나지 않은 탓에 이주비 대출도 안될 뿐더러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도 여의치 않아서다. 전세가격을 낮춰 매물을 내놓아도 2년이 안되는 짧은 거주 기간 때문에 새로 들어오려는 세입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전세 보증금이 수억원에 달하는 강남권 대형 아파트에서는 이같은 보증금 반환 문제가 더 심각한 상황으로 번질 조짐이다. 집주인이 다주택자인 경우 추가로 대출을 받거나 집을 팔아서 보증금을 마련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가 재건축 단지 과열을 막기 위해 서울 등 투기과열지군에서는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 세대를 제외하곤 조합원 지위를 팔지 못하도록 강화했고, 주택담보대출도 가구당 1건으로 제한했다.
전셋집 싸게 내놓아도 임시세입자 못구해
송파구 신천동 미성아파트(전용면적 59㎡)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오는 4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전세금 미반환 우려로 불안에 떨고 있다. 2년 전 보증금 2억 6000만원에 전세 계약하고 이사를 왔는데 올 들어 전셋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다. 이달 현재 1억 4000만까지 급락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집주인이 새 세입자도 구하지 못해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까 염려하고 있다. 이씨는 “집주인에게 가능한 빨리 집을 비우겠다고 연락을 미리 취했지만, 대출 여력이 없어 새 세입자를 구하기 전에는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했다”며 “이주 시기가 다가와 하나둘씩 빈집이 늘 때까지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지 않아 최대한 빨리 집을 옮기고 싶은데 전세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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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세입자 피해 없게 대책 마련해야”
전셋값이 5억~7억원에 달했던 대형 아파트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신규 세입자 확보도 어려울 뿐더러 집주인이 다주택자이거나 기존에 대출이 있는 경우 주택을 팔지도 못하고 추가 대출도 막혀 목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서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비율을 40%로 낮췄고, 이미 주택담보대출이 1건 있는 가구의 경우 추가 대출도 막았다.
이주 조정 시기에 들어간 서초구 신반포(한신3차)아파트 전용 108㎡형 전셋집이 2년 전 5억 7500만원에서 이달 현재 3억 6500만원으로 2억원 넘게 떨어진 상태다. 같은 기간 반포 경남아파트도 전용 131㎡형이 6억 3000만원에서 2억 9000만원으로 크게 하락했다.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 가운데 융자가 있는 분들도 상당해 추가 대출이 어려울텐데 이주 시기가 계획보다 많이 지연되면 세입자와 전세보증금 반환 분쟁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서라는 서울시의 재건축 이주 시기 조정이 전셋값 급락과 함께 전세 보증금 미상환 사태를 낳고 있다”며 “세입자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정부나 서울시가 긴급 자금 대출 등 지원 방안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