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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올림픽 국가대표를 뽑는 것과 맞먹는다.’ 세계 권위의 대형 콩쿠르에 출전하는 것도, 입상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란 의미다.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콩쿠르 출전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기량은 물론 운도 따라야 한다는 게 클래식 관계자의 전언이다. 콩쿠르는 이제 단순한 경연이 아니다. 박제성 평론가는 “콩쿠르는 세계 음악가의 비즈니스 장이다. 개최 지역의 축제이자 세계투어 협연자를 가려내는 경연장이고 유수의 음악매니지먼트사가 연주가를 섭외하려는 경쟁의 현장”이라며 “대형 콩쿠르에 출전하려면 대부분 심사위원 추천이 필요한데 유명 지휘자나 연주가를 사사하는 게 유리하다. 철저한 인맥의 장”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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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콩쿠르 우승자를 보면 예원학교를 나온 서울예고 출신이 많다. 소프라노 신영옥·조수미 등 선화예술학교 출신도 있다. 예고를 졸업한 뒤 유학을 떠나거나 한국종합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유명교수에게 사사한 후 해외 유명학교를 마치는 게 클래식계 엘리트 코스의 정석이다. 대개는 초등학교를 전후로 입문한 뒤 주목을 받으면 예술학교를 지원한다. 음대 교수나 학생에게서 개인레슨을 받기도 하는데 보통 한 달에 2~4번, 일주일에 1번 정도다. 1회 평균 레슨비용은 10만원, 많을 때는 40만원 이상이 든다.
선화예중·고를 나온 피아니스트 황지수(41) 씨는 “예술학교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서양음악사도 일찍 배우고 연주를 접할 기회도 많다. 친구 연주를 보고 평가하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콩쿠르 입시반은 따로 없다. 실력 차이도 있고 각개 전투다. 콩쿠르는 입시·커리어를 쌓기 위해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일상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국제콩쿠르 출전은 전교 1~3위에 해당하는 학생에게 주며 일반 학생은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클래식계에 따르면 최근에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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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퀸엘리자베스콩쿠르 바이올린부문에 국내서 처음 우승한 임지영(20)도 서울예고와 한예종 출신이다. 해외 유학경험이 없는 임지영은 “국내서 공부해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며 “내년 2월에 졸업하면 한예종 대학원에 진학해 계속 국내서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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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연주자의 세계적 성과 뒤에 ‘금호영재콘서트’ 시리즈가 있다는 건 이제 통설이다. 한국인 첫 쇼팽피아노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비롯해 웬만한 국제 콩쿠르 본선 진출자가 모두 ‘금호영재’ 출신이다. 피아노의 김선욱·김태형·손열음, 바이올린의 권혁주·김봄소리·신진아·임지영·조진주, 첼로의 고봉인·문태국 등이 이곳을 통해 데뷔했다. 1998년부터 14세 미만 음악영재를 선발해 독주회를 여는 프로그램을 통해 1000여명이 혜택을 봤다. 유망한 연주자에겐 콘서트홀 대관료, 홍보비, 항공권 외에도 무대자세나 자기소개법 등을 알려주는 매너스스쿨, 마스터클래스 등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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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영재’를 통해 2004년 데뷔한 선우예권(26)은 국내 피아니스트 중 국제콩쿠르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거머쥔 연주자다. 지난 7년간 7개 콩쿠르에 우승하면서 쉬지 않고 크고 작은 무대를 열어왔다. 목프로덕션은 “선우예권은 생계형 출전이라고 농담을 하지만 콩쿠르 출전은 연주기회는 물론 무대경험을 늘리려는 의도가 많다. 준비에는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른다. 관객 앞에선 긴장감이 100배는 더 고조되는데 ‘멘탈강화’ 노력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박 평론가는 “연주자가 연주기회를 많이 얻으려면 영향력 있는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해야 하는데 국내에선 메이저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면서도 “메이저 콩쿠르에 입상하기만 하면 직업 음악가로서의 삶이 보장되는 건 옛날 얘기”라고 못 박았다. 이어 “국내에 세계시장을 이끄는 음악 비즈니스가 형성되지 못한 게 안타깝다. 인맥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현재 재팬아츠와 계약을 맺고 활동 중이다. 국내 소속사는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지영도 여러 매니지먼트사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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