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판결]“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파견 근로자도 사용업체가 안전 책임져야”

하도급 업체 “직접 고용 안했다” 책임회피
법원 “업무 직접 지시…안전배려의무 이행해야”
  • 등록 2016-04-04 오전 6:30:00

    수정 2016-04-04 오전 6:30:00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2010년 4월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작업을 하던 A(35)씨는 묵직한 쇳덩이를 맞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꼭대기에서 작업을 하던 직원이 떨어뜨린 1㎏짜리 쇠뭉치는 하필 안전모도 쓰지 않았던 A씨의 머리로 떨어졌다. 15㎝의 흉터가 남을 정도로 심한 뇌손상을 입은 A씨는 행동 및 정신장해를 안고 살게 됐다. A씨의 부인은 결국 이혼 후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A씨는 얽히고설킨 피라미드 구조식 하도급 맨 아래에 있는 파견직 근로자였다. 피라미드 가장 상위에 있는 B중공업은 선박 작업 일부를 C사에 하청을 줬고 C사는 D씨를 통해 인력을 구했다. A씨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것은 D씨뿐이었다. 쇳덩이를 떨어뜨린 사람 역시 B중공업으로부터 다른 일감을 하청 받은 E사의 직원이었다.

평생 장애를 안게 된 A씨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는 장해급여는 6900만원에 불과했다. A씨는 B중공업과 C사, D씨를 상대로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또 E사에 대해서는 가해 근로자의 사용자로서 직원의 실수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울산지법 민사항소2부(재판장 최윤성)는 A씨가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1심을 깨고 “C사와 D씨는 A씨에게 2억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B중공업 등 피고 모두 책임이 있다고 판단, 함께 4억 94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 C사는 “A씨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고 A씨를 채용한 D씨에게 도급을 줬기 때문에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C사가 A씨에게 직접 작업지시를 내리고 작업일보까지 관리한 것으로 보아 D씨가 A씨를 C사에 파견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이 경우 C사는 A씨에 대한 보호의무와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 대해 묵시적 약정이 있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시효(3년)가 지났다는 C사와 D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시효가 5년인 상법상 채무불이행으로 판단해 기각했다. C사와 D씨는 A씨와 직접 혹은 묵시적으로 맺은 근로계약에 포함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고 이를 계약상 채무불이행으로 본 것이다.

서울변회와 이데일리가 뽑은 이달의 판결’ 선정 자문위원인 김기천 변호사(39·사법연수원 36기)는 “파견근로자가 사용사업주 간에 파견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질상 파견에 해당하면 사용사업주는 근로자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A씨가 이번 판결에 따른 배상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C사와 D씨 모두 손해배상금을 낼 돈이 없기 때문이다. A씨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측은 “C사와 D씨의 재산내역을 봤는데 손해배상금을 낼 여력이 없다”며 “피고 중 배상금 지급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B중공업뿐인데 항소심에서 책임이 면제됐다”고 말했다. A씨는 B중공업과 E사를 상대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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