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구애흔적'에 문화재청이 설레는 까닭은

'남해안 공룡화석산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
뼈화석 아닌 '흔적화석' 많은 한국
등재조건 '보편적 가치' 증명 위해
美서 짝짓기 전 수컷 행위 밝혀내
올해부터 유럽서도 연구 확대
등재 땐 콘텐츠·관광산업 등 시너...
  • 등록 2016-01-18 오전 6:16:00

    수정 2016-01-18 오전 6:16:00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구애행위를 하고 있는 거대 수컷공룡의 모습을 추정한 그림.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수컷공룡의 구애행위 흔적화석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찾아내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사진=문화재청).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정초 문화재청에 낭보가 전해졌다. 국제 저명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표한 논문이 게재된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3년간 미국 콜로라도주의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연구한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2009년 막바지에 철회했던 ‘남해안 공룡화석산지’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다시 탄력을 받게 된 순간이다.

◇대형 육식공룡 구애 흔적화석 세계 최초 발견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논문은 미국 콜로라도대와 공동시행한 공동학술조사(2011∼2014)의 최종 결과물이다.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지층이 있는 콜로라도주 서쪽 두 곳과 동쪽 한 곳에서 수컷공룡이 땅을 긁은 흔적 50개 이상을 무더기로 확인한 것이 바탕이 됐다. 수컷공룡이 암컷공룡 앞에서 뒷발로 땅을 넓게 파 나중에 태어날 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흔적화석을 찾아낸 것이다. 크기는 지름 0.75~2m, 너비 0.50~1.25m, 깊이 5~25㎝ 정도다. 발자국으로 보아 대형 육식공룡인 아크로칸토사우루스(Acrocanthosaurus)로 추정하고 있다. 아크로칸토사우루스는 몸길이 11.5m, 무게 최대 7t, 두개골(머리) 길이 1.3m에 이르는 대형 공룡. 지금까지 이들의 구애장소와 활동이 흔적화석으로 확인된 적은 없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미국 콜로라도주 현지에서 공룡 구애 흔적화석을 조사하는 모습(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이 미국까지 가서 땅 팠던 이유는?

이번 성과는 한국 남해안 공룡화석산지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국제비교연구에서 나왔다. 공룡화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뼈와 이빨 등으로 이뤄진 골격화석과 발자국와 알, 서식지 등의 형태가 남은 흔적화석이다.

공룡의 골격화석은 국내외 자연사박물관에서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유물이다. 수천만년 전에 멸종한 공룡의 실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흔적화석은 공룡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한국은 초원이나 사막이 없어 공룡의 골격화석을 발견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흔적화석만큼은 선진국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 경남 고성과 진주, 전남 화순과 보성 등 총 100여곳에서 공룡의 흔적화석이 보고됐다. 특히 남해안 일대 고성 등은 백악기 최대 규모의 공룡발자국 화석지를 비롯해 아시아 최대규모의 익룡발자국 화석, 가장 오래된 물갈퀴 새 발자국 등을 보유한 공룡 흔적화석의 성지로 꼽히고 있다.

문화재청은 1993년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를 천연기념물 제313호로 지정한 이후 지속적으로 남해안 일대 공룡 흔적화석을 찾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오고 있다. 현재 문화재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 가운데 총 13곳이 공룡흔적화석과 연관돼 있다. 이런 배경 덕에 2002년부터 남해안 공룡화석 산지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실제 2008년 유네스코 실사단이 와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사에 앞서 신청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남해안 공룡흔적화석’은 인류가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서 보편성 입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 심사에 떨어지면 공룡 흔적화석으로 자연문화유산의 재심사를 받을 수 없다. 문화재청은 공룡 흔적화석이 한국 남해안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화석이 아닌 다른 대륙에도 발견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화석임을 입증하기 위해 조사단을 꾸렸다. 조사단은 미국으로 건너가 수년간의 조사와 연구 끝에 지난 7일 세계 최초로 육식공룡의 구애흔적을 발견해 공룡흔적화석의 보편적 가치를 새롭게 증명할 수 있었다.

국내 남해안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 산지 (사진=문화재청)


◇‘남해안 공룡화석산지’ 세계자연유산 될까

그렇다면 이번 성과로 한국의 남해안 공룡화석산지가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조사에 참여한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문화재청 직원들이 미국까지 가서 연구를 추진한 것은 결국 제주도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한 포석”이었다며 “공룡화석산지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국가가 없는 만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 관광산업뿐만 아니라 국가브랜드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공룡의 흔적화석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노리고 있는 국가는 한국 외에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의 성과로 한국의 공룡 화석산지가 두 국가보다 한층 더 유리해졌다.

임 연구관은 “공룡은 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해 영화, 애니메이션 등 세계 보편적인 콘텐츠로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발견으로 당장 올 4월 고성에서 열리는 제4회 공룡엑스포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새로운 콘텐츠 발굴에 각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공룡을 소재로 한 콘텐츠제작은 물론 관광산업을 키우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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