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nd SRE][Survey]총평①유체이탈 신평사…과거와 다른 너

등급신뢰도 5점만점에 3.18점…또다시 추락
증권사 목표주가처럼 바뀌는 기업 신용등급
아웃룩·트리거 신뢰도 동반 하락
  • 등록 2015-11-24 오전 5:00:01

    수정 2015-11-24 오전 6:23:08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신용평가회사들이 과연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의문은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설문(SRE)의 출발점이자 10년간 제기해온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과점구조의 국내 신용평가사가 기업들에게 자신이 가장 양호한 등급을 주는 곳이라고 세일즈하는 ‘등급쇼핑’과 이로인한 ‘등급 인플레’가 시장을 왜곡시키고 투자자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레 신평사들이 등급을 후하게 주는 시기에 등급신뢰도는 하락하는 것이 그간 추세였다.



“신용평가사는 스스로 존재감을 상실했다. 매번 등급을 올리기만 하니 이제 말하기도 싫다. 거의 막가자는 분위기다.” 이는 등급신뢰도가 5점 만점에 3점으로 SRE 역사상 아직도 깨지지 않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2011년 4월 13회 조사때 자문단 평가다.

2011년 6:1 vs 2015년 1:6

신용평가 3사의 등급 상·하향배율(Up/down Ratio)은 외환위기 이후로 보면 2005년이 가장 높았다. 등급 상하향배율이란 특정기간 중 등급하향건수 대비 등급상향건수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이 값이 1보다 크면 상향이 더 많고 1보다 작으면 하향이 더 많은 것이다.

2005년은 SRE가 시작한 시점이고 다시 상하향배율이 최고점을 경신한 때가 2011년 4월 설문 직전이었다. 3사 평균 등급상하향배율은 5.97배로 6개 등급을 올릴 때 1개 등급을 내린 꼴이었다. 당시는 신평사들이 진흥기업을 필두로 LIG건설, 삼부토건 등 건설업체들의 부실징후를 제때 전해주지 못했고 현대건설(000720) 인수합병(M&A)같은 대형 크레딧이슈에 어떠한 코멘트도 내놓지 않으면서도 등급은 후하게 쳐줬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신평사에 대한 실망감이 역대 최저 신뢰도로 나타났던 시기가 2011년이다.

등급을 퍼주던 신용평가사들이 환골탈태했다. 2012년을 기점으로 1배 미만을 나타내던 신용평가 3사의 등급 상하향배율은 올 상반기 한기평 0.13배, NICE신용평가 0.18배, 한국신용평가 0.19배를 기록했다. 평균 0.16배로 1곳의 등급을 올릴때 6곳의 등급을 떨어뜨린 꼴이었다. 2011년 ‘6:1’과 정반대의 수치 ‘1:6’. 야구에서 만루홈런을 쳐도 역전 할 수 없는 이 수치를 바라보는 시장의 반응은 놀랍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등급하락 강풍 속 신뢰도 하락

22회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설문(SRE) 등급신뢰도 설문 결과는 이례적이다. 시장은 등급신뢰도가 역사적 최저점이던 2011년과 정반대의 등급액션을 취한 신평사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지난달 12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간 증권사와 자산운용·은행·연기금·공제회 등 회사채 전문가 159명이 응답한 설문 결과, 국내 3대 신용평가회사 전체 신뢰도 점수는 5점 만점에 3.18점을 기록했다. 19회 3.11점 (2014년 상반기)을 기점으로 21회 3.44점(2015년 상반기)까지 3회 연속 오르던 신뢰도가 2년 만에 하락했다. 2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상승분을 한꺼번에 반납한 하락 속도도 가팔랐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올 상반기 유례없는 등급하락 강풍 속에서 신뢰도가 하락했다는 점이다.

등급신뢰도 하락은 다양한 응답자 특성별 분석에서도 일치한다. 크레딧애널리스트(63명) 평가는 3.24점으로 지난 21회(3.58)보다 0.34점 하락했고 채권매니저와 브로커 등 비크레딧애널리스트(96명)의 평가 역시 21회(3.34)보다 낮은 3.14점을 기록했다. 이밖에 △회사채업무 경력이 7년 이상 시니어그룹 88명(3.42 →3.13) △1~6년인 주니어그룹 71명(3.44→3.24) △본인 업무 중 회사채 비중이 61% 이상인 응답자 61명(3.39→3.16) △본인 업무수행시 신평사 자료 이용도가 61% 이상인 응답자 89명(3.52→3.22) 등 다양한 표본에서 신뢰도 하락현상이 예외없이 나타났다.

어제의 너와 또다른 너

22회 SRE 설문결과를 분석한 자문단회의에서도 ‘신평사들이 등급을 많이 떨어뜨렸는데 왜 신뢰도는 떨어졌나’라는 주제가 화두였다. 큰 틀에서는 등급 하향이 가팔라진 것에 대한 피로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는 또 다른 설문항목인 ‘등급조정속도’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6개월간 등급 하향 움직임은 ‘정상화를 넘은 과도한 하향’이라는 응답이 35.8%(159명 중 57표)로 가장 많았다. 올 상반기 조사때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35.3%(173명 중 61명)로 최다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직전 조사때 등급조정의 속도에 대한 시장반응이 ‘이만하면 됐다’였다면 이번 조사에선 ‘고만해라 마이 묵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가파른 하향 속도 못지않게 하향의 단계가 주식시장이 목표주가 변경하듯 너무 잦다는 점이 더 근본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자문위원은 “유체이탈화법도 아니고 한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처럼 평가하면 당황스럽다”며 “증권사가 매분기 적정주가 매기듯 신용등급을 분기별로 바꾸면 어떻게 신뢰가 쌓일 수 있나”고 지적했다.

다른 자문위원은 “채권이 장기물인데 등급이 6개월도 안돼서 바뀌면 등급 자체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등급을 한 번 줄 때 심사숙고해서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가야 하는데 정기평가 끝나고 실적 나왔다고 또 떨어뜨리니 시장이 더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설문은 올 3월 14일부터 10월8일까지 신평 3사의 등급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이 기간 대우조선해양(042660), 현대중공업(009540), 동국제강(001230) 등 다수 기업에서 두 차례 이상의 등급액션이 나타났다. 장기물인 회사채 등급을 단기간에 여러번 바꿨다는 것은 이유와 배경을 떠나 과거 등급이 엉터리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잘못된 결과에 대한 반성의 문구조차 없었다. 그것이 올 상반기 신용평가사 신뢰도 하락의 근본적 원인이다.

아웃룩·트리거 신뢰도 동반하락

등급신뢰도와 함께 보조지표로 조사하는 등급전망(Credit outlook)과 감시(Credit watch)제도에 대한 신뢰도 역시 5점 만점에 3.08점으로 직전설문(3.26)보다 하락했다. 아웃룩 평점은 19회 설문 이후 2회 연속 상승하며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잠시 나왔으나 이번 조사에서 등급신뢰도와 동반 추락했다. 21회 설문부터 새롭게 추가한 트리거(Trigger·등급 상하향 변동요인)제도에 대한 평점도 3.60점에서 3.47점으로 하락했다. 총체적 신뢰도의 하락을 증명하는 결과들이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2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s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문의: st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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