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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를 노리는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혼선을 빚고 있다. 가상화폐를 상품으로 보느냐, 아니면 화폐로 봐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분분한데다 이에 관한 법적 기준은커녕 판례조차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닌 가상징표”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미 가상화폐가 통화로 활용되고 이를 노리는 범죄 또한 급증하고 있어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암호화 화폐는 상품? 화폐?…혐의 적용 ‘난감’
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지난 10일 이스트소프트 알툴즈 회원 계정에서 약 2500만건의 개인정보를 빼돌린 뒤 해당 업체에 “비트코인으로 5억원을 주지 않으면 정보를 다른 곳에 넘기겠다”며 협박한 중국인 국적 조모(27)씨를 구속했다.
조씨 일당은 중국에 작업장을 차리고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알툴즈 사용자 16만 6179명이 등록한 아이디·비밀번호 2546만 1263건을 빼냈다. 이후 피해업체에 현금 5억원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을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유출한 개인정보로 가상 화폐 거래소에 접속해 피해자 2명에게 현금 800만원 상당(10일 현재 4859만원)의 비트코인을 가로채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컴퓨터를 조작해 금전적인 수익을 챙겼기 때문에 관련 혐의를 적용했지만 가상화폐가 법적 가치가 있다는 판례가 없어 혐의 인정을 장담할 수 없다”며 “피해 규모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현 시세를 피해자들의 손실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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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의 법적 가치를 둘러싼 사법부의 판단에도 관심이 쏠린다. 수원지법은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모(34)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지난 9일에서 이달 30일로 연기했다.
기소 당시 약 5억원이던 비트코인의 가치는 현재 49억원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재판부가 항소심 선고에서 가상화폐 몰수를 결정하면 금품으로서 법적 가치를 인정한 첫 사례가 된다.
반면 정부는 가상화폐의 법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1일 과천 정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며 “(가상화폐는) 가상징표 정도로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밝혔다.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금융IT학과 교수는 “가상화폐를 금융상품 혹은 제3의 화폐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사각지대를 노린 범죄가 속출할 것”이라며 “가상화폐에 대한 거래 규제를 높이는 한편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처벌 규정 등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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