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의 한 중견 자동차 부품회사 김모 상무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매출이 1000억원이 넘을 정도로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원청업체인 자동차 대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협력업체인 중소 제조업체들이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로 수익성과 근무여건 악화 등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이 원청업체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특히 납품단가 인하 요구로 중소제조업체들은 임금, 복지 등의 개선과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뤄지지 못해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자사 이익만 추구하는 원청업체
협력사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는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원청업체들의 ‘이기주의’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10일 중소기업중앙회가 240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제조업의 원가절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청업체들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적절하지 않은 이유로 ‘원청업체의 이익추구를 위한 일반적 강요’(42.9%)를 가장 많이 꼽았다. 원청업체들의 수익성 확보만 달성하면 협력사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외 △관행적 요구(20.8%) △기술지원 및 성과보상 없음(18.8%) 등의 이유로 원청업체의 납품가격 인하 요구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게 하청업체들의 의견이었다.
전자기기 부품업체 대표 김학용(52·가명)씨는 “납품다각화를 위해 거래중인 대기업 외에 다른 회사와의 거래 사실이 알려지면 거래가 끊길 수도 있다”며 “납품가격 인상대신 물량 공급을 더 하는 조건으로 계약해 손실을 최소화했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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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가격 인하 요구는 2·3차 협력업체로 갈수록 부담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원청업체가 원가절감을 요구하는 시기는 ‘1년 단위’가 35.8%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3차 이상의 협력사에서는 ‘수시’라는 응답이 36.5%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원청업체가 요구하는 납품단가 수준에 관한 조사에서도 1차 협력사의 경우 ‘3% 미만’이 37.8%로 가장 높았던 반면 2차(44.4%), 3차(38.5%) 협력사는 ‘3~5%미만’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특히 3차 이상 하청업체의 경우 5~10% 미만의 단가 인하 요구를 받는다는 응답고 26.9%나 돼 하위 협력업체로 갈수록 납품단가 인하에 대한 압박이 점점 높아졌다.
기계업종의 중소기업 대표 한모씨는 “원청업체로부터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받게 되면 수익성 확보를 위해 2차 협력사에 부품 가격 인하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며 “적정 납품단가를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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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중기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전년대비 7.7%포인트 늘어난 61.7%가 납품단가가 적정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유승민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대한 하청단가를 인상해 중소기업의 임금인상과 고용유지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지난 9일 ‘새누리당 중소기업·소상공인특별위원회’에서 “대기업이 협력업체·납품업체에게 얼마나 ‘쥐어짜기’를 하길래 이렇게 이익을 많이 내느냐”며 “이익을 내기보다는 납품단가를 올려주는 게 우리 경제를 위해 더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고 강조했다.
여권 수뇌부가 하청업체의 납품단가 인상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납품단가 인상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 마련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김모 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가격을 원청업체로부터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적정 수익이 담보되지 않아 결국 임금 인상 및 투자 지연 등으로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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