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올해 인수·합병(M&A) 시장 키워드는 ‘쏠림 현상’이다. 대형 블라인드 펀드 위주로 자금이 쏠리다 보니 글로벌 확장성이나 안정성 있는 자금력을 가진 섹터로 투자가 쏠렸기 때문이다.”
올해 M&A 시장 트렌드에 대한 국내 투자은행(IB) 관계자의 평이다. 다수 M&A 거래가 대형 사모펀드(PEF) 위주로 이뤄지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2024년을 관통한 키워드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형 하우스들이 올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던 조 단위 빅딜을 모두 주도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대형 PEF들이 M&A 시장을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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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국내 IB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전반적인 M&A 거래건수는 증가했지만, PEF 운용사 주도의 조 단위 빅딜은 부족한 한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PEF 운용사가 이끈 조 단위 빅딜 건수는 2021년 15건, 2022년 4건, 2023년 2건으로 팬데믹 이후 부침을 겪고 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로 상반기 1건에 불과했지만, 그나마 하반기로 오면서 3건이 추가돼 총 4건의 딜이 성사됐다.
올해 PEF 운용사가 이끈 조 단위 빅딜 거래의 신호탄은 MBK파트너스가 쐈다. MBK는 지난 4월 국내 의약품 도매 1위 업체 지오영 최대주주인 블랙스톤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MBK는 블랙스톤이 보유한 지오영 지주사 조선혜지와이홀딩스 지분 71.25%와 이희구 지오영 명예회장 지분 일부를 약 1조 1860억원에 인수했다.
컨소시엄을 구축해 빅딜을 성사시킨 사례도 눈길을 끈다. 스틱인베스트먼트-캑터스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은 지난 8월 데이터베이스 전문업체 티맥스데이터에 1조 900억원을 투자해 지분 72%를 취득했다. 컨소시엄은 최근 박대연 티맥스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인 보유지분 22.4% 전량을 증여받아 지분 약 94%를 확보했다. 이로써 티맥스데이터를 단독 경영하게 됐다.
‘폐기물’ 거래가 절반
올해 발생한 총 4건의 빅딜 중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올해는 ‘폐기물 M&A의 해’였다. 그중에서도 최근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딜은 IMM컨소시엄(IMM프라이빗에쿼티-IMM인베스트먼트)의 에코비트 인수다. IMM컨소시엄은 이달 중순 국내 최대 폐기물 처리 업체 에코비트 인수를 완료했다. IMM 컨소시엄은 지난 8월 TY홀딩스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로부터 에코비트 지분 100%를 2조 700억원에 인수하는 SPA를 체결했다. 앞으로 IMM 컨소시엄은 동종 업계 기업을 연이어 인수해 시너지를 강화하는 볼트온(Bolt-on) 전략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 지난 8월 글로벌 PEF 운용사 EQT파트너스는 제네시스프라이빗에쿼티와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 1위 업체 KJ환경의 경영권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KJ환경 인수가는 약 1조원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빅딜은 아니지만, 올해 다양한 폐기물 M&A 거래가 성사됐다. 예컨대 지난 9월 어펄마캐피탈-더함파트너스 컨소시엄은 국내 최대 매립용량을 가진 폐기물 매립 업체 제이엔텍 지분 51%를 인수하는 1차 거래를 마무리했다. 지분 100%를 인수하는 2차 거래까지 포함하면 총 거래액은 5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는 지난달 부방그룹 수처리 자회사 3곳을 2600억원에 인수하는 SPA를 체결했다.
다양한 매물 대기…내년에도 대형사가 빅딜 주도
연말 SK그룹이 한앤컴퍼니와 SK스페셜티 지분 85%를 2조7000억원에 인수하기로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만큼 거래가 완료되면 내년 M&A 거래금액에 포함된다. 롯데그룹이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롯데렌탈 지분 56.2% 매각건도 1조원이 훌쩍 넘는 규모다.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 롯데손보, 롯데카드, 케이카 등 굵직한 매물이 새 주인을 찾고 있다.
기업들은 내년 경기침체와 글로벌 리스크 등을 감안해 일부 자산매각에 나설 수 있고 재벌의 경영권 분쟁, 상속세 납부 부담으로 승계 과정에서 나오는 매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대기업들은 신규 투자에 보수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프로젝트 펀드 위주인 중소형 PEF들이 내년에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결국 M&A 시장 매물을 소화할 주체는 대형 PEF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경수 삼일PwC M&A 센터장은 “내년도 M&A 시장은 제한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며 “아무래도 최근 어려운 기업환경 여건으로 볼 때 내년 상반기 키워드로 ‘리밸런싱(사업재편)’을 꼽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