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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규 중앙대 인공지능인문학사업단장(국어국문학과 교수)은 8일 “일종의 지식 저장고인 인공지능에서 필요한 지식을 도출하는 수단이 질문”이라며 “질문하는 능력이 없으면 저장고에 지식이 아무리 많이 축적돼 있어도 활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도 “문제 풀이보다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는 능력이 중요한데 이는 문제를 제시하면 인공지능이 해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라며 “질문을 잘하려면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호기심과 자기 주도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질문하는 능력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다”며 “가장 중요한 질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특별한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받는 학생에게 ‘질문’은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지적 호기심과 사고력·창의성을 함양하게 해준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기초·배경지식이 있어야 하고 지적 호기심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에선 사고력과 창의력이 길러진다. 이찬규 단장은 “학생들에게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할 땐 질문이 열쇠라고 설명하는 데 이는 대충 열쇠를 만들면 대략적인 답이 나오지만 열쇠를 잘 만들면 정교한 답변이 나오기 때문”이라며 “다만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좋은 질문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대학원 교수도 “독서 등을 통해 쌓은 배경지식이 토대가 돼야 좋은 질문도 가능하다”고 했다.
문제는 지금의 초·중·고 교육을 통해선 이러한 ‘질문하는 능력’을 충분히 체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지난 1월 교육부로부터 받은 ‘고교 수업 유형별 학생 참여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6월 28일~7월 14일 전국 고교 교사 121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8.6%(710명)가 “수업의 상당 부분은 강의식으로 진행한다”고 답했다. 교사 중 73.3%(887명)는 “학생 참여형 수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 수업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교사들도 질문 등을 통해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입시 대비나 맞춰야 할 진도 탓에 혁신을 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초·중·고 수업을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적 호기심이 생길 때 학습이 이뤄지는데 수업 방식을 바꿔 수업 전 학생들에게 질문을 준비해오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는 대학가에서 활성화된 이른바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을 초·중·고에도 널리 도입해보자는 제안이다. 수업 전 미리 학습자료를 예습한 뒤 수업 중에는 교사에게 질문하거나 특정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방식을 통해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자는 것. 나승일 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과 교수(전 교육부 차관)도 “대학 입학 전에는 질문하는 게 어색했던 학생도 대학에서 거꾸로 학습을 해보면 점차 질문의 질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김성천 교수는 “학생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주고 질문이 나올 수 있게 유도하는 프로젝트형 수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교육부도 학교 교육에서 ‘질문’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교육부는 작년 6월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에서 연간 ‘질문하는 학교’ 120곳을 선도학교로 선정,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질문과 토론이 일상화되는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정책”이라며 “이를 통해 질문 중심 수업 모델을 교육 현장에 확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수업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선 대입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천 교수는 “객관식 문항으로 평가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논·서술형 평가로 개선해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앞서 교육부가 2028학년도부터 적용하겠다며 작년에 내놓은 대입 개편안에는 수능을 논·서술형 평가로 전환하는 내용이 빠졌다. 검토는 했지만 공정성 시비나 답안 채점의 어려움 등을 우려해 중장기 과제로 넘긴 것이다.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현행 수능 체제를 유지하더라도 논·서술 문항을 연차적으로 5%, 10%로 확대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찬규 단장은 “대입이 아니더라도 중·고교 수행평가를 통해 질문이나 문제 제기를 잘하면 평가를 잘 주는 방식도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