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30% 올려도 청약 못받아요" '투기장'된 기관 수요예측

올해 상장한 새내기주 95% 공모가 희망범위 초과
오상헬스케어 등 공모가 30% 상향된 업체 늘어
공모가 뻥튀기 현상 확산에 일반투자자 피해 우려↑
"수요예측 내실화 위한 대안 마련해야"
  • 등록 2024-05-16 오전 5:30:00

    수정 2024-05-16 오전 5:30:00

[이데일리 김응태 기자] 올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새내기주 10곳 중 9곳의 공모가가 희망범위 상단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모가가 희망범위 상단을 30% 넘게 웃도는 기업도 연이어 등장하며 ‘공모가 뻥튀기’ 논란이 일고 있다. 상장일 가격제한폭 확대 이후 기관투자자들이 수요예측에서 더 많은 물량 배정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왜곡된 공모가를 바로잡기 위해 주관사가 수요예측 참여 기관투자자자 선정과 관련한 내부기준을 마련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선 이 같은 규제로 기관투자자와 증권사를 옥죌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공모가 뻥튀기 온상된 IPO 시장…의무보유비율은 ‘뚝’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1월1~5월12일) 상장한 새내기주(스팩 상장 제외) 20곳 중 공모가가 희망 범위 상단을 초과한 곳은 19곳(95.0%)에 달했다. 단 1곳(5.0%)만 희망범위 상단에서 공모가를 확정했다.

공모가 희망 범위 상단을 30% 넘게 초과한 곳도 3곳에 이른다. 오상헬스케어(036220)엔젤로보틱스(455900)는 모두 2만원에 공모가를 결정했다. 이는 희망 공모범위 상단인 1만5000원을 33.3% 웃도는 수준이다. 아이엠비디엑스(461030)는 희망범위 상단 9900원 대비 31.3% 높은 1만3000원에 공모가를 정했다.

올해 공모가가 높게 책정되는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것은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상장한 19개 상장사 중 희망범위 상단을 넘어서 공모가를 결정한 기업은 단 3곳(15.8%)에 불과했다. 상단인 기업은 11곳(57.9%)이다. 희망범위 하단은 2곳(10.5%), 하단을 하회한 곳은 3곳(15.8%)이다.

공모가 고평가 논란은 수요예측 과정에서 경쟁적으로 더 많은 공모주를 배정받기 위해 높은 가격을 써낸 기관투자자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6월 말 상장일 가격변동폭(60~400%)을 확대한 이래로 공모주 수요가 늘어나며 시장이 과열됐고, 수요예측 가격을 높이 주문할수록 청약 물량 확보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기관투자자가 증가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공모가 희망범위 상단 대비 30%까지 (수요예측 가격을) 높게 썼다가 공모주 물량을 못 받은 적도 있다”며 “이제는 40~50%까지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업계에서 돌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합리적인 공모가를 산정해야 하는 수요예측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관투자자들의 가격 결정 기능이 왜곡되면서 공모 시장이 투기 성격을 띠게 되면서다. 특히 공모가가 기업가치 대비 과도하게 부풀려지면서 기관투자자들이 상장 첫날 바로 주식을 팔아버려 단타 매매를 부추기고, 상대적으로 주문속도가 느린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공모가는 상향 흐름이지만 기관투자자들의 의무보유확약 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는 게 왜곡된 시장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 상장한 20곳의 새내기주의 평균 의무보유확약 비율은 13.2%에 불과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90%가량의 지분이 상장 당일 출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의무보유확약 비율이 5% 미만인 곳은 △이에이트(2.35%) △오상헬스케어(2.85%) △케이웨더(3.93%) △민테크(4.23%) △아이엠비디엑스(4.5%)등 5곳에 달한다.

공모가 왜곡에 개미들 눈물…해법은

정부는 최근 이 같은 논란이 확산하자 가격제한폭 확대 1년 만에 제도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지난 9일 개최했다. 금융감독원은 공모가 고평가에 따른 실추된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하기로 했다. 수요예측 참여자의 적격성을 확보하고, 공모물량 배정의 합리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증권사들이 내부기준 마련을 의무화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업계 일각에선 이런 대책 마련이 기업공개(IPO) 시장을 옥죄는 규제로 작용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공모가 고평가 논란은 지난해 주관사가 기관의 주금납입능력에 따라 청약 물량을 배정하도록 규제한 탓에 수익 확보가 어려워진 소형 운용사가 난립하며 벌어진 일”이라며 “소형 운용사를 다시 규제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물량을 배정받은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확약 기간을 의무적으로 설정하거나, 일반 청약자 보호를 위해 공모가 대비 주가가 일정 가격 이하로 내려가면 주식을 되사주는 환매청구권 적용을 확대하는 방법 등이 제시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관투자자나 외국인에 대해서 의무보유 기간을 의무적으로 설정하거나, 주관사가 일정 가격 이하로 주가가 내려가면 3개월 등 일정 기간 책임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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