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970년대 중반 군 복무 중. 미합동군사훈련의 연락장교로 오산비행장에 갔다. 입대 전 한국에서 가장 명문으로 꼽히는 대학의 공대생이었지만 주눅이 들었다. 블랙버드라고 불리는 당시 미 공군의 SR-71 정찰기를 실제로 봤기 때문이다. 1965년부터 미 공군에서 운용하기 시작한 블랙버드는 수십킬로미터 상공에서 레이더를 피해 마하 3.3의 속도로 세계를 누비며 각종 정보를 모았다.
이를 위해 열과 공기와의 마찰에서 생기는 260℃의 열에도 끄떡없고 조종사에게 열기를 전달하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소재로 동체를 만들어야 했다. 마하 3.3의 속도를 내려면 엔진의 설계도 달라야 했다. 냉전시대가 만든 최첨단 공학기술의 산물. 국산 자동차가 겨우 달리기 시작한 때 SR-71을 직접 본 뒤 인간의 위대함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공학이라고 확신했다. 강태진 서울대 공대 교수의 얘기다.
1984년부터 모교의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공대 학장을 역임한 강 교수는 지난 3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공학기술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자 핵심이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제국의 영화는 주변의 문명보다 탁월했던 공학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다른 문명보다 요새를 축조하고 수로를 건설하는 공학기술이 뛰어났던 덕이라고 했다. 현재 미국이 세계의 제국으로 올라선 것도 결국 과학을 응용한 공학의 발전을 밑거름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1960년대 SR-71 정찰기뿐만 아니라 최근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IT산업을 이끌어가는 미국 기업들의 성장기반에도 공학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단다. 국민소득 3만달러 목전에서 묶여 있는 대한민국이 한단계 뛰어넘는 발전을 이루려면 공학을 기본으로 한 융복합기술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이다.
공학 전문가의 시각으로 역사를 살핀 것, 공학이 기여한 인류 발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설득력 있게 잘 읽힌다. 공대 교수로 3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겪은 아쉬운 점과 이공계 기피현상을 보이는 국내 상황에 대한 지적은 따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