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th SRE][워스트]현대그룹, 등급 하락에도 회의적 ‘시선’

자구계획 효과 불확실…예상 못한 차입금까지
  • 등록 2014-05-13 오전 7:00:00

    수정 2014-05-14 오전 9:04:57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현대그룹에 지난 한 해는 ‘악몽’과도 같았다. 주요 계열사의 업황 불황과 실적 악화는 계속되는데 재무구조를 개선할 여력이 없어 신용등급은 빠르게 하락했고, 계열사 간 파생계약은 그룹에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현대그룹은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으로 버티는 와중에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와 법적 공방까지 불거지며 대외 신뢰도에도 타격을 입었다.

결국 연말에는 3조3000억원이라는 대규모 자구계획안까지 내놓았다. 팔 수 있는 건 모두 팔아서라도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직도 냉랭하다.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까지 떨어졌지만 현대그룹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대규모 자구계획안 역시 시장 참여자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19회 SRE에서도 이같은 시장의 우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9회 SRE에서 현대그룹은 총 109표 중 27표(24.8%)를 받아 워스트 레이팅 3위에 올랐다. 18회 SRE에서 1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순위가 낮아졌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이미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18회 SRE와 비교해 강등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상선(011200)현대엘리베이터(017800) 등에 투기등급인 BB+를 부여했다. 현대그룹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까지 떨어졌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아직도 현대그룹에 대한 신용등급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구계획 진행되는데 우려 ‘왜?’

현대그룹은 지난해 말 현대증권 매각, 현대상선의 액화천연가스(LNG) 전용선 매각, 부산신항만 매각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자구계획안을 발표했다. 현대그룹의 계획대로라면 3조3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장 참여자들이 현대그룹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은 자구계획 개선 속도가 더뎌 실질적인 차입금 축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그룹이 내놓은 자구계획안 중 일부는 제시한 금액만큼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증권 매각이다. 현대증권은 4월 말 현대차그룹의 HMC투자증권이 인수를 추진한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HMC투자증권은 이를 곧바로 부인했다. 산업은행이 현대증권 매각을 위한 매각자문계약을 체결하고 2000억원을 대출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지만 구체적인 인수 대상자는 떠오르지 않고 있다.

특히 현대증권의 매각가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의 매각가를 7000억원 정도로 추정했지만, 업계는 매각가가 높아야 5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의 지분 22.43%를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 매각된 우리투자증권의 매각가 등을 고려하면 7000억원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이 제시한 3조3000억원의 현금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기업평가는 매각 자산의 차입금 등을 고려한 순현금유입액이 2조원가량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LNG 전용선 매각은 현대그룹의 계획대로 상반기내 완료돼 약 400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LNG 전용선을 매각함에 따라 향후 현대상선의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현대그룹의 ‘맏이’와 다름없는 현대상선의 영업정상화가 그룹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현대상선의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에 시장 참여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차입금

현대상선의 2013년 말 기준 차입금은 5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1년 이내 만기도래하는 차입금이 회사채 1조8000억원, CP 4000억원 등 1조7000억원 규모다. 그런데 최근 이 차입금에 추가로 1조3300억원의 차입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할 위기에도 처했다.

지난 3월 신용평가사들이 잇따라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A급에서 BBB급 또는 투기등급인 BB+로 내린 것도 예상치 못한 차입금 만기가 한꺼번에 도래할 위험 신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1000%가 넘어섰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186%에 이른다. 부채비율이 1000%가 넘어선 것은 사채모집위탁계약서의 재무비율 유지 조항을 어긴 것이 된다.

현대상선은 그동안 회사채를 발행하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부채비율을 1000% 이하로 유지하겠다는 의무조항을 사채모집위탁계약서에 명시해왔다. 부채비율 1000%가 넘었기 때문에 기한이익 상실 원인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즉, 사채권자들이 결의하면 현대상선은 만기가 남은 회사채라 하더라도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 규모가 1조3300억원이다. 신평사들은 이같은 위험을 반영, 만기가 1년 이상 남은 공모사채와 선박금융 등을 단기성차입금에 포함했고, 단기성 차입금이 급격히 증가하며 현대상선의 신용등급도 하락했다.

현대상선의 위기는 곧 현대그룹의 위기와도 같다. 현대그룹은 순환출자 지배구조의 특성 때문에 대부분 계열사가 영업, 재무위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계열사의 주식을 담보로 손실을 보전해주는 파생계약 상품 확대도 계열사 간 위험을 공유하는데 일조했다.

이 때문에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로지스틱스 등 계열사의 신용등급도 동반 하락했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 1000% 상회가 현대엘리베이터 등 그룹의 동반 신용등급 하락을 몰고 온 셈이다.

현대그룹의 신용등급은 지난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강등됐다. 1년여 동안 무려 신용등급이 5단계나 하락했다. 그럼에도 시장 참여자들이 현대그룹을 워스트 레이팅 기업으로 선택했다.

끊이지 않는 위기설

시장 일각에서는 “현대에만 맡겨둬서는 안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책 금융으로 연명하는 것에 한계가 있고, 자구계획안 이행도 속도를 내지 못하자 제 3자를 통한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숫자로만 봐도 현대그룹이 마주한 현실은 만만찮다. 만약 현재 진행 중인 3조3000억원의 자구안을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올해 도래하는 차입금 만기와 파생상품 만기 등 3조원 규모의 현금 유출에 대한 대응은 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 현대그룹은 공모사채 8000억원, 기업어음(CP) 3000억원 등 시장성 차입금만 1조1000억원의 만기를 맞는다. 장기차입금과 금융리스 등 만기도 추가될 예정으로 시장에서 신규로 자금을 융통하지 못하면 자력으로는 만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책금융 등 정부의 지원도 한계가 있다.

현대상선의 경쟁력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도 시장의 우려를 키운다. 그룹 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상선이 경쟁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자구계획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의 실적은 컨테이너선이 약 73%, 벌크선이 약 26% 등을 차지한다. 벌크선 중 가스선과 전용선은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시황 변동에 따라 실적 변동도 크다. 게다가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벌크선의 비중은 전체의 7%에 불과하다.

특히 해운업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공급 과잉에 원가부담이 커지는 전형적인 취약 구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이 적자를 지속하고 있고, 현대그룹 역시 합산 적자가 3년 연속 지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현대그룹의 어려움도 해결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순환출자구조로 인해 현대상선의 적자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로지스틱스의 출자 부담과 지분법 평가손실로 이어졌다. 또한 파생상품 계약으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고, 만기 정산을 위한 현금 유출 부담도 크다. 이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SRE 한 자문위원은 “해운업 업황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자력으로 살아남으려면 바닥을 찍는 방법밖에 없다는 얘기가 있다”며 “신용등급마저 하락한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회사채 등 자금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19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19th SRE는 2014년 5월9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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