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안전은 법에 명시된 내용을 지키도록 하고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지시적 규제방식’이었다. 그러다보니 경영이 어려운 일부 사업장에서는 실질적인 예방보다 법에 명시된 기준만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해 사고사망자를 오는 2026년까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중대재해감축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핵심은 ‘위험성평가’다. 위험성평가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가 작업 전에 위험성을 찾아내 개선하고 그 내용을 공유해 재해를 예방하는 선제적 안전활동이다. 영국 등 안전 선진국들은 1990년대 이미 이 제도를 도입해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최근 법원의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판결도 위험성평가의 중요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필자가 중처법 시행 이후 지난 7월까지 관련 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18건을 분석한 결과 94.1%인 16건이 위험성평가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모든 위험을 찾아내야 한다. 사고 후 처벌이 부담된다고 개선하기 쉬운 위험만 평가한다면 오히려 사고를 키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과거에 발생한 재해와 아차사고는 물론 합리적으로 예견가능한 위험까지 평가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넷째,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고 공유해야 한다. 산업현장은 정형화된 작업과 비정형 작업이 일상화된 곳이다. 따라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위험을 같이 찾고 대책도 만들고 공유한다면 실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정부지원 활용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위험성평가를 보다 쉽고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의 문턱을 낮추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중소사업장에 대해서는 무료 컨설팅과 재해예방에 필요한 재정지원도 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이 운영하는 ‘안전꼼꼼e KRAS(위험성평가시스템)’를 이용하면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마스 풀러는 “미리 예견한 위험은 반쯤 피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밤길을 걸으며 들었던 등불은 타인을 향한 배려이자 그동안 밤길을 오가며 부딪쳤던 경험을 통해 마련한 안전대책이었다. 사전에 위험을 알고 대비하는 위험성평가는 산업현장의 안전등불이다. 안전의 실천 주체인 노사가 함께 참여해 위험을 찾아 공유하고 개선해 나갈 때 우리의 일터는 더 안전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