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빨리감기'한 세상, 국제 협력만이 살길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
파리드 자카리아|388쪽|민음사
3년전 팬데믹 예견한 국제정책 자문가
팬데믹 이후 세상의 변화를 전망하다
  • 등록 2021-04-28 오전 5:58:00

    수정 2021-04-28 오전 5:58: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종식은 아직 멀기만 하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정세도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4년 전 질병에 의한 전 세계적인 팬데믹을 예견하고 이를 경고한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뉴스위크’ 편집장 출신의 국제정책 자문가이자 ‘차세대 헨리 키신저(미국의 국제정치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파리드 자카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17년 6월 CNN을 통해 “치명적인 질병이 세계보건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며 어떤 대비도 돼 있지 않은 전 세계에 엄중한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했고, 최근 국내서 번역된 신간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은 파리드 자카리아가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에 대해 쓴 책이다. 그는 지금의 팬데믹이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보다 치명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코로나19가 지나간다 해도 미래에 또 다른 전염병이 발병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라며 “우리는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트 팬데믹이라는 새 시대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종식 이후에 대해 혹자는 팬데믹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낙관론을 내세우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더 이상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비관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저자는 낙관과 비관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전망을 제시한다. 팬데믹 다음 단계의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을 ‘빨리감기’한 버전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책 제목에서 눈에 띄는 것은 ‘팬데믹 다음 세상’이지만 책의 방점은 ‘텐 레슨’, 즉 교훈에 놓여 있다. 저자는 팬데믹 전후 세계의 변화 양상을 바탕으로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것과 앞으로 고민해야 할 것을 크게 10개의 챕터로 정리해 제시한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을 세계화와 개방, 무계획적인 개발, 그리고 자연서식지 파괴라는 인간 활동의 반작용으로 해석한다. 성장과 안전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안전벨트’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위기상황에서 크기보다는 능력으로 판가름할 ‘질 좋은’ 정부가 중요하다는 교훈도 강조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 아래 팬데믹에 대한 대응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미국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초강대국이라는 권위 덕분에 형편없는 정치도 감출 수 있었던 미국의 민낯이 팬데믹으로 낱낱이 드러난 만큼 “이젠 미국이 세계로부터 배워야 할 차례”라고 강하게 경고한다.

팬데믹으로 앞당겨진 디지털 전환, 팬데믹으로 더 중요해진 도시의 안전성 등에 대한 내용은 다소 뻔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불평등과 양극화가 전 세계에서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후반부는 국제정책 자문가로서 저자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가 서로 봉쇄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오히려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과 중국의 ‘양강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이는 또 다른 냉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팬데믹 다음 세상’은 협력의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세계가 될 수도 있고, 극단적 민족주의나 이기적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희망은 협력에 있지만, 선택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쓰여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저자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 로렌스의 대사를 빌려 말한다. 팬데믹 다음 세상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중요함을 에둘러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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