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위 안의 기업 순위, 수조원의 총자산, 공정거래법의 규제 등은 그 시절에는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용어들이었다. 바닥이었던 가요계가 대기업으로 환골탈태한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이러한 융기와 경이적 성장세는 한없이 자랑스럽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일제히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외국의 대접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모든 분야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 앞에 K를 붙이는 게 자연스러워졌을 만큼 코리아의 깃발이 여기저기 휘날리고 북이 격하게 고동을 친다. 과거에는 한국하면 ‘코리안 워’(6.25전쟁)였지만 지금은 엄연히 K팝이다. 변방의 소외, 과거의 굴욕은 사라졌다. 문화매력 선두국가로 점프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영미 팝 다음 자리를 두고 라틴팝과 겨룰 지금의 K팝 기세라면 하이브 외에 앞으로 더 많은 엔터사들이 대기업 타이틀을 꿰찰 것이다. 가요제작사가 대기업이 되는 게 득이냐 실이냐는 규제 혹은 자산과 관련한 분석일 테지만 그것과 다른 측면에서 득실을 한번 재볼 게 분명히 존재한다. 어마어마한 자산규모로 이제는 더 이상 음악계를 얕볼 수 없게 됐지만 외형의 폭풍 성장이 과연 전부인가 하는 의문이 반사적으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침이슬’의 가수 양희은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가수와 돈의 관계는 묘해서 가수가 돈을 벌고 있다면 그는 이미 아티스트로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가리키지요. 인기든 위세든 ‘내려갈 때’ 가수는 돈이 벌린다는 거예요.” 한 유명작곡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잘 안되다가 한 곡이 성공해 큰돈을 만진 뒤부터 오히려 창의적으로 빛 아닌 그림자를 경험했다.” 대중적 성공이 예술적 성과와 정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으로의 포효 속에 이것을 잃지 않는다면, 그래서 지속적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환경을 구축한다면 K팝은 아우라의 궤도 속에 글로벌 울림의 비행을 계속할 것이다. 재정적 성공과 함께 예술적 완성도 제고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멍가게와 가요바닥의 7080 시절은 절대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때의 음악이 깡그리 잊힌 게 아니라 지금도 전설과 불후의 명곡으로 숭앙되고 있지 않은가. 인디가 그렇듯 음악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큰 공들이 많다. 그리고 과유불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