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스튜디오 강제촬영’ 사건 피해자 양예원 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은의 변호사가 지난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글이다.
이 변호사는 “박 시장의 마지막 선택이 고소된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그 선택은 박 시장이 졌어야 할 책임의 무게를 피해자의 어깨에 내려놓는 형국이 된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애도가 먼저 아니냐고 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사안의 본질이나 책임을 압도하는 것은 옳은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시장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사과받지 못했고 사과받지 못하게 된, 피해에 대한 판단을 구할 수조차 없게 된 피해자는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 의혹과 마찬가지로 비공개 스튜디오 강제촬영은 수사 과정에서 범죄 발생지로 지목된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주요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에 대한 혐의는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
“죽음으로 답을 해선 안 될 일”
대한민국 제1·2도시인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의 단체장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같은 ‘의혹’과 ‘사건’으로 동시에 자리를 비웠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언론도, 정치권도. 유튜버도 어느 선까지 지켜가면서 표현해야 할 지 혼란스러운 형국이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사실이 알려졌다. 그가 ‘I SEOUL U(아이 서울 유)’라고 적힌 볼펜으로 남긴 유서에는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모두 안녕”이라는 인사뿐. 극단적 선택에 대한 원인이나 이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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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벌어진 ‘조문 공방’에 이어 이틀 만에 50만 명이 참여한 ‘서울특별시장(葬)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을 보면 예상할 수 있다. 조문이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전 비서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볼 수 없지만, 고인의 남다른 발자취만을 추켜세우는 지나친 미화는 경계해야 할 때이다. 서울특별시장이 아닌 조용하게 가족장으로 치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와 서울특별시 성평등위원회 위원,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을 지낸 배복주 정의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일 SNS를 통해 “생전에 성 평등을 위해 서울시 젠더 특보, 젠더 자문관을 둘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고인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부끄러워 할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배 위원장은 “고인의 죽음만큼 피해 호소인의 고통을 주목해야 한다. 고인의 명예만큼 피해 호소인의 명예를 지켜주어야 한다. 고인의 추모만큼 피해 호소인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내야 한다. 용기 낸 피해 호소인의 잘못이 아니다. 서울시와 시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이라고 했다. 이어 “살아서 해명하고, 해결하지 않고 죽음으로 답을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제 남아 있는 우리 모두가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할 지를 더욱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평범한 사람… 특정 세력 아니다”
성추행 피해를 주장한 박 시장의 전 비서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거나 제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다만 그에게도 박 시장의 죽음은 큰 충격이고 현재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지고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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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행정안전위원회 간사인 박완수 의원은 “공소권이 없더라도 이미 고소가 접수된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경찰청장으로서의 입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행안위 소속 4선 권영세 의원도 SNS를 통해 ‘이춘재 사건’이 공소권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과오정정 등 수사 실익이 있다는 이유로 수사가 이뤄졌음을 언급하며 “(박 시장 의혹을) 이대로 수사하지 않고 미결 상태로 두면 피해자와 박 시장(또는 그 유가족) 중 진정으로 억울한 어느 한 편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또 “박 시장처럼 우리 사회 내에서 한동안 기억할 인물은 ‘후대’를 위해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므로 정확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며 “이 사건이 미결로 남겨질 경우 우리 사회 내 심각한 진영 대립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의 조문 ‘정쟁’으로 본질이 흐려질 우려가 커지는 지금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을 폭로한 김지은 씨의 편지가 떠오른다.
김 씨는 2018년 3월 안 전 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뒤 자필 편지를 통해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저를 비롯한 저희가족은 어느 특정 세력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 신상 문제를 거론하거나 정치적 의도로 폭로한 것 아니냐는 등의 “악의적인 거짓 이야기가 유포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수사나 여론의 관심도 벅찬데, 자신 관련한 허위 사실을 해명까지 해야 하는 힘겨운 심정이 편지에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