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토끼가 알려준 '한국의 차마고도'를 걷다

‘길 박물관’ 경북 문경의 옛길을 가다
경북 제1경으로 알려진 ‘진남교반’
문경선 폐터널의 화려한 변신 ‘오미자테마터널’
1500년간 민족의 역사 묵묵히 지켜본 ‘고모산성’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어려운 코스 ‘토끼비리’
  • 등록 2021-08-20 오전 6:00:00

    수정 2021-08-20 오전 6:00:00

한국의 차마고도로 불리는 경북 문경의 ‘토끼비리’


[문경(경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진한 흙냄새 풍기는 옛길을 만나러 가는 길. 도시의 화려함 속에 고즈넉한 향기를 품은 경북 문경으로 떠난다. 문경은 길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 경북 내륙에서 충북 충주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다. 특히 소백산맥이 문경의 북쪽을 가로막고 있어 서울에서 문경을 찾아가려면 험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지금도 문경 곳곳에는 옛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조선시대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던 ‘문경새재’를 비롯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갯길인 ‘하늘재’, 옛길의 백미이자 한국의 차마고도로 불리는 ‘토끼비리’, 영남대로의 허브 역할을 담당했던 유곡역 등등. 아직 살아있는 문경의 ‘옛길’들이다.

경북 제1경으로 알려진 진남교반. 낙동강 지류인 영강이 어룡산과 오정산 사이를 춤 추듯 흐르는 곳에 자리했다. 그 위로 철길과 국도 등 3개의 교량이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진남교반’

영남대로 옛길 중 고모산성과 토끼비리를 찾아가는 길. 문경 시내로 향하는 3번 국도 도로변의 진남휴게소가 목적지다.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 어룡산과 오정산 사이를 춤 추듯 흐르는 곳에 자리했다. 그 위로 가로놓인 철길과 국도 등 3개의 교량이 뻗어간다.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경북 제1경’으로 알려진 진남교반의 풍경이다. 진남휴게소 폭포 왼쪽 암벽 위에는 ‘경북팔경지일’(慶北八景之一)이라 새겨진 돌비가 세워져 있다.

진남휴게소 주차장을 지나면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길과 오미자테마터널이 보인다. 문경 특산품인 오미자와 도자기를 주제로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석탄 운반을 목적으로 개통했던 문경선의 폐터널을 한 농업회사법인이 사들여 리모델링했다.

석탄 운반을 목적으로 개통했던 문경선의 폐터널을 한 농업회사법인이 사들여 리모델링한 오미자테마터널


터널 입구에 도착하면 거대한 빨간 지붕 모양의 철제 조형물이 반긴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계절을 거스르는 듯 조금씩 시원해진다. 연중 평균기온이 15~18도 안팎이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터널 길이는 540m. 국내 관광사업으로 개발된 터널 중에는 가장 길다. 입구부터 200m 지점까지는 오미자를 형상화한 작품을 전시 중이다. 여기에 동물이 등장하는 벽화나 레이저 빔이 쏟아지는 철제 무대 등 오미자와 관련 없는 포토존도 많다. 그중 형형색색 우산이 천정에 가득 매달린 구간이 가장 유명하다. 조명을 머금은 초록, 노랑, 주황, 파랑 우산들이 어두운 터널을 화사하게 밝힌다.

경북 문경 1500년 역사를 가진 고모산성의 진남문


민족 수난사 묵묵히 지켜본 ‘고모산성’

경북 문경 1500년 역사를 가진 고모산성의 성곽길
오미자테마터널을 나와 우측 샛길을 오르면 숲길이다. 이 숲길을 지나면 진남문과 석현성이 보인다. ‘남쪽으로 진입한다’는 뜻을 가진 진남문 양옆으로 날개를 펼치듯 쌓은 성이 석현성이다. 석현성 한쪽은 고모산성 남문으로 잇닿고, 다른 쪽은 토끼비리에 닿는다. 성 안쪽에는 돌고개 주막거리가 있다. 문경에 남은 마지막 주막인 영순주막과 예천에 남은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을 재현해놓았다. 주막거리가 있는 고개는 꿀떡을 파는 고개라고 해서 ‘꿀떡고개’라고도 불렀다. ‘꿀떡을 먹으면 과거에 떡!’ 하니 붙는다고 해 붙은 이름.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에게 꿀떡이 인기 상품이었다.

주막거리에서 나와 고모산성 남문지로 향한다. 고모산성은 진남교반 북쪽에 자리한 고모산에 위치한 것으로 삼국시대 때 쌓았다. 고모산성의 성곽은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반복했다. 지금은 옛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남문지와 북문지, 동쪽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삼국시대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이곳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말기 의병 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길이 1.6km, 너비 4m에 이른다. 성의 높이는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11m다. 복원한 느낌이 강하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규모는 작지만, 성은 철옹성으로 불릴 정도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우리 군사 한명 없이도 하루 동안 적의 진격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주변 산세를 이용해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있었다. 산성의 전망대로 가려면 꽤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성은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진남교반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지난 1500여 년간 이 땅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경북 문경 1500년 역사를 가진 고모산성.
영남대로의 원형이 남아 있는 ‘토끼비리’

석현성벽이 끝나는 지점부터 토끼비리가 아스라이 이어진다. 영남대로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길이다. ‘비리’란 물을 끼고 있는 벼랑을 뜻하는 말인 ‘벼루’의 영남 사투리다. 영남대로 옛길에서도 가장 어려운 코스로 불린다. 토끼비리는 문경새재로도 이어지고, 새재가 놓이기 전 기록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랜 옛길이라는 하늘재로 이어진다. 하늘재가 놓인 것이 삼국시대(156년)이니, 이 길에 잠겨 있는 시간은 1000년을 훨씬 뛰어넘는 셈이다.

길이 열렸던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토끼비리 길은 아슬아슬 위태롭다. 가파른 산비탈의 허리를 잘라 길을 냈는데, 발아래로 까마득히 영강이 흐르는데다 좁은 구간은 길의 너비가 채 두뼘이 되지 않을 정도다. 조선시대 ‘여지도서’에서는 토끼비리 길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산이 거듭되고 첩첩이 산봉우리가 쌓여 천개의 이빨 같이 서로 제압하는데다, 돌벼랑 사다리길로 통행에 조심해야 한다. 무릇 하늘이 만든 험한 곳이다.”

토끼비리 바위에는 조선 숙종 때 고쳤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이 길을 처음 낸 사람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으로 알려져 있다. 왕건은 견훤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내려가다가 문경새재 남쪽 길이 막혀 생사기로에 몰렸다. 이때 토끼 한 마리가 계곡 사이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벼랑을 잘라 길을 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의 이름이 ‘토천’, ‘토끼비리’로 불리게 됐다. 토끼가 다닌 길인 만큼 좁은 구간은 길의 너비가 채 두뼘이 되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옛 선인들은 가파른 옛 산비탈의 이 좁은 길을 걸었다. 한양으로 향하는 길 중 가장 빠른 길이어서다. 유독 경사가 심한 벼랑길이지만, 짚신을 신었을 옛 선인들의 발자국의 흔적이 마치 화석처럼 남아 있는 이유다.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석회암 바위에 새겨진 시간의 깊이와 옛사람의 체온은 바위를 깎아 만든 석회암 길을 반들반들 유리알처럼 닳게 만들었다. 지금은 중간중간 안전하게 덱을 깔아두었지만, 여전히 위험하다. 가파른 낭떠러지가 아래에 있고, 길 위에선 지금도 돌이 부서져 떨어지고 있다.

바위를 깎아 만든 석회암 토끼비리는 오랜 시간 그 길을 건너간 발길에 반들반들 유리알처럼 닳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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