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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원유 수요는 급감한 반면 석유 패권을 둘러싼 치킨게임으로 생산은 오히려 늘면서 포화상태에 이른 저장고를 비우기 위해 돈을 주고 원유를 파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가격이 싼 일부 저등급 원유에서 발생한 현상이지만 증산 경쟁이 본격화할 경우 확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유가 폭락은 정치·경제적으로 코로나19 확산에 비견할 만한 메가톤급 이슈다. 전례 없는 실물경제 위기와 함께 초저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물가하락과 경기침체가 함께 찾아오는 디플레이션이 전세계를 덮칠 가능성도 있다.
일부 저등급 유종 이틀째 0달러 아래서 거래
31일(현지시간) 에너지거래업체 머큐리아에너지에서 거래된 미국의 일부 유종 중 5개는 배럴당 10달러 아래에서 가격이 형성됐다. 그 중 와이오밍 아스팔트용 저등급 원유는 전날(-47센트)에 이어 이날 -8센트로 0달러를 하회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저장고가 없어 돈을 주면서 기름을 처분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돈을 받고 원유를 그냥 가져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원유 생산을 중단하는 것보다 돈을 주더라도 가져가게 하는 게 덜 손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2014년 마이너스금리가 본격 등장했을 때의 ‘사건’과 견줄 만하다.
이외에 와이오밍 고등급 원유(Eastern Wyoming Sweet·9.62달러)와 콜로라도 원유(North East Colorado·9.45달러) 등은 한자리수 가격을 기록했다.
이런 기현상은 상식을 깬 악재들이 줄줄이 겹친 탓이다. 가장 큰 원인은 국제정치 불균형이 빚어낸 공급 과잉이다. 당초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들은 수급 균형을 위해 감산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면서 사우디도 증산 강공 태세로 갑자기 전환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맹주인 사우디는 이달부터 산유량을 하루 1230만배럴로 늘린다. 2월 대비 30% 가까이 증산했다.
사우디는 “증산을 멈춰달라”는 미국의 요청마저 거부했다. 유가의 추가 폭락은 미국 셰일가스업계의 줄도산을 유발할 수 있다. 에너지업계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으로 꼽힌다. 사우디로서는 최대 우방국인 미국을 궁지로 몰더라도 석유 패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탄화수소(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화합물) 시대의 끝자락에 산유국들이 생존을 위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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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원유 수요 급감까지 덮쳤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추정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전세계 원유 수요는 최대 25% 감소했다. 하루 원유 수요가 평균 1억배럴인 점을 감안하면 2500만배럴은 팔리지 않고 쌓이고 있다는 계산이다.
로버트 퍼킨스 S&P 글로벌플래츠 연구원은 5월 브렌트유 전망치를 배럴당 12달러로 전망하면서도 “얼마든지 한 자릿수로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수요가 높은 3대 원유가 이 정도 수준이면, 나머지 유종은 대부분 0달러 안팎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원유시장 대혼란은 경제에 전방위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 당장 네덜란드·영국계 로열더치셸, 프랑스 토탈, 미국 쉐브론 등 굴지의 석유기업들이 설비투자 계획을 줄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석유산업이 100년 만에 최악의 위기와 마주했다”고 평가했다
나머지 산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초저유가가 길어지면 기대인플레이션이 급락하면서 소비 감소→생산 감소→소득 감소→소비 감소의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과도한 저유가가 장기화하면 세계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금융 불안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