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과 전쟁이라는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해외로 흩어졌던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이들이 적지 않다. 그 중 굳이 세 사람을 꼽자면 프랑스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한 박병선(1929∼2011) 박사, 고종과 순종의 어보 환수를 위해 평생을 바친 큐레이터 조창수(1925∼2009) 선생, 안중근 의사의 유묵 환수에 결정적 공을 세운 황수영(1918∼2011) 전 동국대 총장을 들 수 있다.
| 박병선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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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의 대모’로 불리는 박병선 박사는 문화재 환수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1955년 33세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그녀는 스승인 이병도 전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외규장각 의궤’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파리에 위치한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중 동양문헌실 특별서고에서 ‘직지’를 발견해 1972년 세상에 공개했다. 이어 1975년에는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에 파손된 책을 보관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폐지로 분류돼 잠자고 있던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마침내 발견했다. 하지만 박 박사는 책의 존재를 한국에 알렸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결국 ‘외규장각 의궤’는 2011년 5월 병인양요 이후 145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박 박사가 프랑스 국적임에도 국가적 공로를 인정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 조창수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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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수 선생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국군포로 조창호의 친누나인 조 선생은 평생을 미국 내 한국문화재 환수와 보호에 헌신했다.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한 그녀는 1965년부터 2009년까지 44년간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아시아담당 학예관으로 일했다.
특히 1987년에는 고종·순종·명성황후 어보 등이 미국 경매에 나온 사실을 알고 소장자를 설득하고 민간기금을 모으는 등 환수에 결정적 공을 세웠다. 유물을 되찾은 뒤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 2007년에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한국실 설치를 주도하기도 했다. 정부는 조 선생의 공을 기려 2013년 옥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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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도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한일회담 당시 문화재 반환협상 한국측 대표로 약탈문화재 반환을 촉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3년 ‘일제기 문화재 피해자료’ 자료집을 발간, 문화재 환수의 기틀을 닦았다. 안중근 의사 유묵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과 정조가 직접 그린 쌍폭으로 알려진 ‘정조필 파초도’와 ‘정조필 국화도’ 환수는 그의 헌신 덕분이다. 정부는 황 전 총장의 공적을 기려 1996년에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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