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일상화된 산불…“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서울 이어 대전서 대형산불 충남 홍성서는 역대 2번째 규모
홍성과 대전 산불로 산림 1369㏊ 잿더미… 이재민만 수백명
이례적 도시산불…임도 확충·내화수림대 구축 등 대안 시급
  • 등록 2023-04-04 오전 6:00:00

    수정 2023-04-04 오전 6:00:00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3일 충남 홍성에서 밤새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이상기후로 산불이 일상화된 가운데 서울과 대전 등 대도시에서도 대형산불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한민국 전역이 산불 위험지대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에서는 역대 최악의 대형산불이 발생했고, 충남에서는 2002년 청양·예산 일대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에 이어 역대 2번째 규모의 초대형 산불이 홍성을 덮쳤다. 이에 따라 산불 관련 전문가들은 “연중 최악의 가뭄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이상기후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보통 산불은 늦겨울부터 봄까지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여름철 집중호우기를 제외하면 1년 내내 이어지고 있고, 그간 강원도 영남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서울과 대전 등 대도시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산불진화헬기가 산불 진화를 위해 물을 투하하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산림청, 대전시, 충남도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12시경 대전 서구 산직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밤새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30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산림당국은 2일 오후 8시 30분을 기해 산불 3단계를 발령했다. 3일 오후 6시 기준 진화율은 79%로 산불 영향 면적은 475㏊로 추정된다. 산림·소방당국은 이날 일출과 동시에 헬기 17대와 진화인력 1000여명을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이 산불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건물 2채가 소실됐다. 이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 및 시설 입소자들은 산직동 마을회관 52명, 기성복지관 689명, 사랑의샘실버타운에 21명 등 모두 894여명이 대피했으며, 이날 오전 중 대부분 귀가·귀소했다.

충남 홍성에서는 2일 오전 11시경 산불이 발생, 건조한 날씨에 강풍을 타고 급속히 확산했다. 산림당국은 2시간 20여분 만인 이날 오후 1시 20분을 기해 산불 3단계로 격상 발령했다. 이에 충남도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장인 김태흠 충남지사는 현장에서 진화를 지휘하며 이날 오후 4시 56분 충남도청 전 직원에게 비상소집을 지시했다. 이후 해가 지자 산림당국은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등 3325명의 인력을 투입해 밤샘 진화 작업을 펼쳤으며, 열화상 드론을 활용해 진화 및 산불 확산을 저지했다. 밤샘 진화를 통해 3일 오전 8시 기준 홍성 산불의 진화율은 69%까지 갔지만 계속된 강풍으로 오후 6시 기준 60%로 떨어졌다. 산불 영향 면적도 965㏊에서 1131㏊(추정치)로 늘었다. 충남에서의 1000㏊ 이상 초대형 산불은 2002년 4월 청양·예산에서 발생한 산불 이후 처음이다. 당시 성묘객의 실화로 추정되는 청양·예산 산불로 산림 3095㏊가 잿더미로 변했다. 서울에서도 지난 2일 오전 11시 53분경 인왕산에 산불이 발생해 3일까지 축구장 21개 면적에 해당하는 임야 15㏊를 태웠다.

그간 서울과 대전 등 대도시권에서의 산불은 등산객, 담뱃불 등으로 인한 실화가 종종 있었지만 주민 대피령이 내려질 정도의 큰 불은 거의 없었다. 이례적인 ‘도시 산불’은 봄철 이상 고온, 가뭄 장기화 등 이상기후 때문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1960~2020년 기상 관측 자료를 활용해 산불기상지수(FWI)를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1~3월 지역별 FWI는 30~50% 상승했다. 강수량의 변화도 심각한 상황이다. 기상청이 발간한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0년(1991~2020년)과 과거(1912~1940년)의 결과를 비교한 분석한 결과, 강수량은 135.4㎜ 늘었지만 봄철 산불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겨울 강수량은 9.3㎜ 줄었다. 이에 따라 관련 전문가들은 그간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1차적 산림 정책이었다면 앞으로는 산불과 산사태 예방 등 재난재해를 막고, 임업인들의 수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고도화 정책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화수림대 구축 및 임도 확충이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산림 중 37%는 소나무와 잣나무 등 침엽수림이다. 이 중 소나무의 송진에는 ‘테라핀’ 등 정유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산불 발생 시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 반면 굴참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등은 나뭇잎에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대표적인 ‘내화수목’으로 불린다.

남성현 산림청장(왼쪽)이 3일 오전 대전 서구 흑석동 기성중학교 운동장에 마련한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이장우 대전시장(가운데), 서철모 대전시 서구청장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과 대전충청지역 산불 진화 상황 판단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또 환경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로 늦어지고 있는 임도 확충도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나라 산림에 설치된 임도 밀도는 3.97m/㏊로 임업선진국인 독일(54m/㏊)의 14분의 1, 오스트리아(50.5m/㏊)의 13분의 1, 일본(23.5m/㏊)의 6분의 1 수준이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이날 오전 대전 서구 흑석동 기성중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대전·충청 산불 진화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통해 “산불을 공중과 지상이 협업해 입체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선 산불진화임도 확충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강풍 때문에 산불이 확산돼 진압에 어려움이 있고, 골짜기는 확산 속도가 더 빠르다”며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서는 임도가 필수적인데 국내에 설치된 임도는 선진국에 비해 10% 밖에 안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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