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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만난 고예린(여·26)씨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이웃기웃 주거협동조합 건물’에 입주하기 전 첫 방문 당시를 떠올리는 것으로 입주 소감을 대신했다. 스무 살 때부터 기숙사와 반지하 방, 옥탑방 등 안 가본 곳 없는 그에게 이곳은 분명 좋은 둥지였다.
이웃기웃 주거협동조합 건물은 SH공사에서 공급하는 청년협동조합 주택 1호로, 지난달 16일 문을 열었다. 서류전형과 3차례의 교육, 입주 계획서 제출 등을 거쳐 31명의 구성원이 정해졌다. 총 면적 550㎡, 전용면적 25~29.92㎡ 규모로 보증금 2100만원에 월 임대료는 9만~11만6000원이다.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해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4만원에도 거주할 수 있다.
이곳은 세입자들이 건물 관리와 운영, 수리까지 직접 한다. 기존 임대주택의 최대 단점이던 ‘관리’의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이 결과는 관리비 절감(월 2만4000원)으로 이어졌다. 월세와 관리비 모두 주변 시세의 40%가 되지 않는다. 임경지(여·27) 이웃기웃 주거협동조합 추진위원장은 “주거 문제는 우리 공동의 문제”라며 “적은 세대로 첫 시작을 했지만, 우리 스스로 임대 주택에 대한 새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주거 문화가 바뀌고 있다. 끝 모르고 치솟는 주거 비용에 대한 외침이다. 거주자들이 내 집을 가꾸는 협동조합형 임대주택, 1·3세대 융합형 룸셰어링이 첫발을 뗐다. 건설업계도 ‘세대 분리형 아파트’를 내놓는 등 내집 마련이 힘든 2030세대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 들어선 상계주공 3단지. 전용면적 76㎡ 규모에 방 2개를 갖춘 이곳의 거주자는 임순빈(여·85)씨와 대학교 2학년생인 조성현(23)씨다. 두 사람은 지난해 여름 노원구 지역신문 룸셰어링 모집란을 통해 처음 만났다.
임씨의 한달 수입은 노령연금 20만원과 룸셰어링비 20만원을 더해 총 40만원이다. 매달 수익의 절반을 룸셰어링을 통해 얻는 셈이다. 임씨는 “룸셰어링 사업을 통해 가계 수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도 이곳에 머물며 생활비를 절약하고 있다. 그는 “주거비 20만원과 교통비·식비 등을 포함해 매달 55만~60만원 가량의 생활비가 든다”며 “친구들이 머무는 학교 근처의 원룸 가격(보증금 1000만원·월세 40만~50만원)으로 한 달을 지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노원구에 따르면 현재 34명(30가구)의 대학생이 보증금 없이 월 10~30만원에 룸셰어링을 이용하고 있다.
‘한지붕 두가족’ 세대분리형 아파트 ‘꿈틀’
이른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불리는 세대 분리형 아파트도 늘고 있다. 한 집이 주방과 욕실을 갖춘 두 가구로 나눠져 있어 집주인과 세입자가 각각 독립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부산 금정구 범천동에 입주한 ‘서면우림노르웨이숲’ 아파트는 총 400가구 중 154가구가 세대분리형으로 공급됐다. 전용면적 84㎡ 중 세입자용으로 분류된 25㎡짜리 임대 공간은 시세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선이다. 정현숙 합동공인중개사 대표는 “초반에는 새로 시도되는 구조라 낯설었지만 최근 들어선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세대 분리형 구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정부가 매매시장 활성화에만 방점을 찍고 있어 젊은 세대를 위한 대안 주택 공급은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라며 “주거 복지 기본법 제정과 함께 지자체가 세대별 맞춤형 주거 복지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