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성추행 사고에 공직사회 '회식 주의보'

인사혁신처 처장 금주선언에 직원들도 술없는 연말연시
서울시·자치구 성추행 추문에 술자리 자제 분위기 확산
"남성중심 회식 문화 바꾸려면 기관장부터 솔선수범"
  • 등록 2014-12-11 오전 6:00:00

    수정 2014-12-11 오전 6:00:00

국가기관, 지자체, 교육청, 공직유관 기관, 대학, 초중고교 소속 직원 7957명(일반직원 2015명, 성희롱 업무담당자 5942명) 대상 2012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복수응답, 단위 %)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서울 A구청에서 근무하는 김미숙(32·가명)씨는 요즘 부서 회식 때문에 고통스럽다. 음주를 즐기는 부장은 자주 부서원들과 회식을 갖는다. 회식이 1차에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키지 않았지만 부서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봐, 근무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울며겨자먹기로 따라갔다가 분위기에 밀려 2차로 노래방에서 부장과 블루스를 추기도 했다.

B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모(50) 부장은 연말 부서 송년회를 회식 대신 뮤지컬 관람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최근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술자리 성추행 사건으로 당사자는 물론 책임자도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뉴스를 본 뒤 내린 결정이다. 김 부장은 “내가 조심해도 부하 직원이 실수하면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뮤지컬 관람 후에 음주 없이 간단히 식사만 하고 송년회를 끝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직사회에 ‘회식 주의보’가 발령됐다. 최근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등에서 성추행에 연루돼 옷을 벗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폭탄주 없는 회식, 문화 송년회 등과 같이 음주 사고를 차단하기 위한 회식들이 확산하는 추세다.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 공무원연금 개혁 등으로 공직사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이 따갑다는 점도 공무원들을 긴장하게 하는 부분이다.

인사혁신처장 “100일간 금주”

공무원 보수·인사체계 개편 등 공직사회 개혁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인사혁신처는 아예 ‘금주령’을 선포했다. 지난달 19일 취임한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업무에 집중하겠다며 ‘100일 금주’를 선언한 뒤 부처 내 직원들도 술자리를 멀리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안전행정부 당시 ‘갑자기 회식 날짜 통보하는 상사’가 공무원들이 일하고 싶지 않은 상사로 꼽힐 정도로 회식 관행이 문제였다”며 “인사혁신처가 출범하면서 처장부터 100일간 일만 하겠다고 선언해 부처 전체적으로 음주 없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각 구청들은 최근 계약직 직원들의 무기계약직(공무직) 전환과 관련, 계약직 직원들이 근무평가 부담 때문에 술자리에 배석했다가 성추행당했다고 제보하는 등 술자리 성추행 사건이 잇따르면서 아예 회식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최근 연말 송년 회식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제보가 여러 건 접수됐다”며 “부서장과 팀장들이 솔선수범해서 1차 회식만 하고 일찍 귀가하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남성 중심 공무원 회식문화 바뀌어야”

공직사회 내부의 자정 움직임도 확산 추세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연말연시 직장 내 회식문화 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회식 일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말고 사전에 공유 △원하는 사람만 음주 △술 따르기, 끼워 앉히기, 블루스 등을 강요하지 않기 △ 2차는 원하는 사람만 참석하고, 강요하지 않기 등이 골자다. 공무원노조는 전국 212개 지부 10만여 명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지자체들은 연말 기강 확립 차원에서 특별감찰을 강화하고 있다. 김천시는 술자리 관련 공직기강 특별감찰에 나서기로 했고, 공주·포항시와 음성군 등도 연말연시 감찰에 나설 계획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여성 공무원들이 늘어나면서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인 공직사회의 회식문화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며 “기관장부터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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