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부채의 증가속도를 조절해온 금융당국은 최근엔 가계의 부채상환 부담을 직접 덜어주는 방향으로 미시적인 대응책 마련에 돌입한 상태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대책은 결국 빚을 내 빚을 갚도록 유도하는 땜질식 처방에 그치고 있어 당국 의도대로 경기가 제때 회복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프리 워크아웃에서 신용대출 전환까지
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집값 하락에 따른 담보인정비율(LTV) 상승으로 부채 상환 압박이 거세지자 LTV 초과분을 장기분할상환이나 신용대출로 전환토록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실제로 집값 하락으로 LTV 한도를 초과한 ‘위험대출’ 은 지난 3월 말 현재 잔액기준으로 44조원에 달한다. 또 올 들어 5월까지 담보가치 하락 등의 이유로 원금을 일부 상환한 대출규모는 1만5000건, 3000억원에 이른다.
◇ 땜질식 처방의 한계
하지만 유로존 위기로 촉발된 현재의 경제위기는 일반적인 경기순환국면에서의 하강국면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구조적인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동산시장의 침체 역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례로 현재 우리나라의 PIR(Price Income Rate: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은 8배가 넘어 3~6배 수준에 불과한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국내 집값이 여전히 높아 계속 하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급속한 고령화와 핵가족화 등 인구학적인 구조 변화까지 고려할 경우 일부 특수지역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부동산시장은 이미 장기 하락추세로 접어들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경기 호전되지 않으면 더 큰 재앙 될 수도
결국 정부 시나리오대로 경기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미래로 이월한 가계부채는 오히려 더 큰 폭발력을 지닌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선 저축은행 사태처럼 당국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외면하고 부실을 계속 감추고 미래로 떠넘기다가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한다. 특히 신용대출의 경우 일반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더 높다는 점에서 ‘약탈대출’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빚을 갚지 못하는 대출자에게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준 뒤 결국 담보물을 빼앗는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이자감면과 상환기간 연장 등의 대책은 당장은 연체율 하락과 함께 위기를 넘기는 효과가 있지만 앞으로 경기가 좋아지지 않으면 더 큰 폭탄을 안고 가야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의 대책들은 결국 빚을 내서 빚을 갚도록 유도하는 꼴이라 상환부담을 미래로 넘기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로선 묘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