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위축' 기업 '호조'…거꾸로 가는 경제심리, 왜?

한은 집계 제조업 업황 BSI, 석달째 상승세
최근 가계 소비심리 급락과 대조돼 더 주목
  • 등록 2017-01-27 오전 5:00:00

    수정 2017-01-27 오전 5:00:0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 기조는 이견이 많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2~3%대 경제성장률이 고착화된 게 그 방증이다.

그런데 최근 가계와 기업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어 주목된다. 가계의 소비심리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와중에 기업의 경제심리는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은 제조업계가 그 선봉장이다.

다만 기업의 호조세가 가계까지 퍼지지 않는 이상 지속가능한 성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나홀로’ 반도체 성장

26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를 보면, 제조업의 이번달 업황 BSI는 75로 전월 대비 3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015년 4월(80) 이후 1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11월 이후 석달째 상승이다.

다음달 전망 BSI(76)도 지난달 전망 대비 5포인트 상승했다.

BSI는 기업가의 현재 경영상황에 대한 판단과 향후 전망을 조사해 작성된다. 경기 동향을 파악하고 추후 경기를 전망하기 위한 자료다. 이번달 BSI는 한은이 지난 12~19일 전국 3313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두드러지는 업종이 기타기계·장비 부문이다. 이번달 업황 BSI는 78로 한달새 14포인트 급등했다. 전자·영상·통신장비(74→82)도 상승세를 보였다.

이는 최근 반도체업계의 ‘슈퍼 호황’ 덕이다. 하세호 한은 기업통계팀 과장은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이 워낙 좋다보니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업황이 좋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005930)는 이미 ‘어닝 서프라이즈’ 실적을 내놓았고, SK하이닉스(000660)도 5분기 만에 영업이익 1조원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사상 최초로 장중 주가 200만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외에 1차금속(77→86), 화학물질·제품(88→96), 의료물질·의약품(92→104) 등의 업황도 나아지고 있다.

자동차(89→82) 같은 일부 업종은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제조업계의 전반적인 기류는 봄바람인 것이다.

이는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에서도 확인됐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0.4% 중 제조업의 기여도는 0.5%포인트였다. 제조업 성장세가 최근 우리 경제를 먹여살리고 있다는 해석이 과하지 않다.

수출기업의 심리가 내수기업보다 더 좋아지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이번달 수출기업의 업황 BSI는 80으로 전월 대비 4포인트 올랐다. 내수기업(70→72)보다 상승 폭이 더 컸다. 최근 수출 반등이 뚜렷해지고 있는 영향이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웃음을 짓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 장중 주가 200만원을 돌파했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심리는 추락 중

최근 기업의 경제심리가 날아오르는 건 가계의 소비심리가 고꾸라지는 것과 대조되면서 더 관심이 모아진다.

한은이 집계한 이번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3으로 지난해 12월보다 0.8포인트 떨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인 지난해 11월부터 석달째 하락이다. 경제계에서는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 우려가 나올 정도다. “나쁘다” “안 좋다”고 자꾸 말하면 괜찮은 경제도 고꾸라진다는 의미다.

하세호 과장은 “국정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어도, 기업은 매출이 잘 나오면 업황은 좋다고 답한다”면서 “(대내외 현안에 더 쉽게 휩쓸리는) 가계와 괴리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기업이라고 대내외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아니다. 경영 애로사항으로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꼽은 기업은 지난달 21.3%에서 이번달 22.4%로 늘었다. 그럼에도 업황 설문조사에서는 실적 등 객관적인 수치를 근거로 응답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제계 일각에서는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정책 여력까지 작아진 와중에 가계까지 위축되면, 성장세를 지속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나홀로’ 반도체 반등이 우리 경제 전체를 이끌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뜻도 된다.

특히 가계 소득이 더 오르지 않는 이상 소비심리의 상승은 요원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장바구니 물가까지 급등하고 있다. 한은 한 인사는 “최근 소득 증가율은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는 소득 증가율이 높아지지 않고 있어 소비심리는 한동안 정체할 것”이라면서 “수출 실적이 반등하는 기업과는 심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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