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잃은 신용평가 개혁]②구조조정 한다며…제도개선엔 무관심

신평사, 상시 구조조정 순기능…평가 독립성 확보 `관건`
순환평가제·지정제·무의뢰 평가 허용 방안 등 검토해야
  • 등록 2016-03-14 오전 6:20:31

    수정 2016-03-25 오후 1:12:28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지난해부터 신용평가사들의 기업 신용등급 하향 움직임이 두드러지자 금융당국에선 다소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정부와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살리고자 하는 기업 신용등급을 신평사가 갑자기 내리면 정책에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신용평가사 고위 관계자)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새 살은 돋게 하고 환부는 잘라내야 고비를 넘을 수 있지만 어디가 새 살이고 어디가 환부인지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 신용상태를 분석해 새 살과 환부를 판가름하는 곳이 은행과 신용평가사다. 특히 국내 기업 구조조정은 주로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신평사가 신용등급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 채권은행과 서로 마찰을 빚는 일도 간혹 발생한다. 가령 채권은행은 기업에 곧 추가 대출이 이뤄질 테니 신용등급 하향을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신평사에 요청하지만, 신평사는 이런 요청을 받아주기 어렵다. 기업이 갑자기 법정관리를 신청해버리면, 그동안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은 신평사에 온갖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채권은행은 신평사보다 기업 재무지표 자체를 신용평가에 더 크게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은행 내부의 기업 신용등급은 재무지표를 기초로 산출된 신용등급에서 신용평가 담당자가 위로 두 단계 올리거나 아래로 두 단계 낮출 수 있는 정성적 판단의 여지를 둔다. 그 이상 신용등급을 변경시키려면 기업여신심사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은행의 기업 신용등급은 재무지표가 바뀌는 데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업여신 규모에 따라 은행의 손실 규모도 달라질 수 있어 대기업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내리기 쉽지 않고 채권은행 간 이해관계도 엇갈릴 수 있어 구조조정 대상 선정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반면 신평사는 기업 재무지표 이외의 전체적인 산업 업황과 미래 전망 등 애널리스트의 정성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고 기업 부실을 평가함에 따라 신평사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은행에 비해 미미하기 때문에 모럴해저드 가능성이 낮다. 물론 신평사는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을 의뢰한 기업에 한해서만 신용위험을 분석하다 보니 시야가 좁고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또 등급평가 수수료를 내는 발행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은행과는 다른 모럴해저드 가능성은 있다.

장단점은 있지만 신평사들이 시장 자율로 이뤄지는 상시 구조조정에서 순기능을 하는 점은 분명하다. 기업이 신평사가 평가하는 신용등급을 높여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려는 동기는 기업 스스로 자산 매각, 부채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게 한다. 이런 시장 스스로의 구조조정을 활성화하려면 신평사가 적정한 신용등급을 적시에 제시할 수 있는 신용평가의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용평가 전문가들은 신평사의 독립성을 확보해 줄 방안으로 순환평가제와 지정제, 무의뢰 평가 허용 방안 등이 진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기업 구조조정에서도 채권은행 중심의 신용위험평가 방법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도록 신평사가 구축한 평가방법론을 함께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신평사들이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신용등급을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견고하다면 기업 구조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신평사의 평가방법론도 절대적인 잣대로 쓸 수는 없겠지만 정부와 채권단의 기업 신용위험 분석에 일부 반영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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