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월급도 쪼매 받는 공무원, 2년 만에 때려칠라 캤죠"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인터뷰
몸에 맞지 않던 관료 넘어 국제기구 수장까지
"정부 외교역량 충분..제2,3의 임기택 나와야"
  • 등록 2015-07-14 오전 6:00:00

    수정 2015-07-14 오후 2:09:23

[세종= 이데일리 윤종성 김상윤 기자] 언뜻 봐도 180㎝가 넘는 키에 90㎏ 이상인 거구의 얼굴은 한껏 상기돼 있었다.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너스레를 떠는 표정에서는 해맑은 소년의 모습도 살짝 보인다. 지난달 30일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에 선출된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 영국 런던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IMO 사무총장이 된 임 사장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났다.

바닷가가 인접한 마산에서 태어나 원하던 해양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하고 싶던 마도로스 길을 걷다가 해양수산부에 들어와 30년 가까이 관료와 공기업 사장을 지낸 사람. 한 문장으로 요약한 그의 이력을 보면 원하던 대로 술술 풀린, 남부러울 것 없는 순탄한 인생 같다. 하지만 그에게도 부침이 있었다. 몸에 맞지 않던 관료 옷을 벗어 던지고 싶던 욕구가 일었던 것도 수차례.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관료생활은 ‘고통’이었다고 한다.

“저는 행정고시나 기술고시 출신이 아닙니다. 마도로스라는 전문경력과 해기사 1급 면허가 있어 해수부에 특채로 들어올 수 있었죠. 하지만 특채로 들어온 것이 문제였어요. 선박 기술 보직만 받아서 해사(海事) 분야에서만 일을 할 수밖에 없었죠. 정책도 짜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하고 싶은 일도 못하니 불만이 쌓였죠. 이곳에서는 ‘내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공무원 생활한 지 2년 만에 그만두려고 했어요”

▲임기택 IMO 사무총장 당선자(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非고시 특채’ 설움 딛고 14년 만에 찾아온 ‘기회’

그를 붙잡은 것은 ‘오기’였다. 이왕 시작한 공무원 생활인데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해사’ 한우물만 팠다. 그리고 해사분야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을 때쯤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IMO였다. 해수부에 입사한 지 14년 만인 1998년. 임 사장에게 주영국 IMO 연락관 업무가 주어진 것이다.

“심해저개발법, 해양환경보호법, 정부의 역할, 연안국 책임 등 해사와 관련된 것은 닥치는 대로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가 전문가가 돼버렸어요.(하하) 해수부에서 해사안전 담당국장을 하고 있을 때 IMO 연락관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잘 됐다 싶었죠. IMO 연락관 생활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한번 맺어진 IMO와의 인연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3년간 IMO 연락관 업무를 수행한 데 이어 2000년부터는 IMO 외교단장을 지냈다. 여기에 IMO 협약준수전문위원회(FSI) 의장(2002∼2005년), 주영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2006~2008년)을 역임하면서 IMO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IMO 주요 인사들과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IMO 관련 업무를 하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자주 기회가 찾아왔어요. FSI 의장직만 해도 처음엔 제가 맡는 게 아니었습니다. IMO사무국은 원래 스웨덴 인사에게 의장을 시키려고 했는데, 회원국들이 반발한 거에요.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인데 왜 스웨덴이 해야 하냐고 강력하게 항의한 거죠. 드문 경우에요. 그러면서 개도국 회원들이 ‘Lim(임기택)’를 추천한 거에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FSI 의장은 정말 얼떨결에 됐어요”

미국 찍고 호주· 모로코..전세계 돌며 선거운동

IMO 안에서 입지가 생기면서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결국 임 사장은 올 초 ‘사무총장 한번 해보자’며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녹록한 상황이 아니었다. 강력한 경쟁자인 덴마크 후보가 EU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데다, 아시아인에게 두 번 연속 IMO사무총장 자리를 내줄 수 없다며 EU 국가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EU 국가들은 일본이 했는데 다시 아시아에 자리를 내줄 수 없다며 저를 공격했어요. 반기문 UN총장이 있는데, 또 국제기구 수장 자리를 줄 수 없다는 기류도 형성됐죠. 부산항만공사 사장을 하면서 3년 동안 IMO 회의에 참석을 안 했더니 모르는 사람들도 태반이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얼굴이라도 비출 걸…. 뒤늦게 후회가 밀려오더라고요(하하)”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IMO 이사국을 차례로 돌며 득표활동을 전개해 나가기로 한 것.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 지난 4월부터 3개월간 여권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쉴새 없이 입국 도장을 찍고 다녔다. 이 기간 중 그가 다닌 국가는 30개국이 넘는다. 비행기를 탄 횟수만 따져도 100번은 족히 넘는단다.

“IMO의 40개 이사국 가운데 30개국 이상을 방문했어요. 아시아는 물론, 모로코, 유럽, 미국, 호주, 아시아 등 완전 세계일주했죠. 한번 찾아가면 외교부와 교통부, 해양부 중에서 최소 2개 부처는 들러야 해요. 인사만 하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저를 테스트해요. 입사 시험 치르듯 일종의 압박 면접을 하는 거죠. 전문가 7~ 8명이 한꺼번에 몰아붙이는데 엄청 힘들더라고요”

▲임기택 IMO 사무총장 당선자(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줄곧 열세였던 변방 후보의 ‘기적같은 대역전극’

결전의 날이었던 지난달 30일. 런던까지 동행한 정부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까지도 자신감보다는 ’불안감’이 컸다. 우려한 대로 1차 선거에서 임 사장이 10표 획득에 그쳐, 덴마크 후보(12표)에 밀리자, 일부는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임 사장은 속으로 ‘예스(yes)!’를 외쳤다고 한다. 생각보다 이탈표가 적었던 탓이다.

“1차 선거에서 최대 14표를 기대했는데, 10표가 나왔어요. 옆에 앉아 있던 유기준 장관은 14표가 안 나왔다고 불안해 하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1차에서 10표만 나오면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유럽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부동표 흡수에 유리한 제가 2차 선거부터는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봤거든요”

예상은 적중했다. 2차 선거부터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최하위를 제외하고 계속 재투표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 매회 발생하는 부동표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임 사장은 2차 선거에서 14표를 얻어 처음 1위에 오른 뒤, 한 번도 승기를 뺏기지 않았다.

결국 덴마크 후보와 맞붙은 최종 결선(5차)에서 임 사장은 총 26표를 획득해 덴마크 후보(14표)를 제치고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처음부터 열세였던 변방의 후보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였다. 그는 당선 소감을 마친 뒤, ‘골프 친구’이자 현직 IMO사무총장인 코지 세키미츠(Koji Sekimizu) 씨와 뜨겁게 포옹했다.

“제2, 제3의 임기택 계속 나와야 한다”

임 사장은 내년 1월부터 4년 임기의 IMO 사무총장 직을 수행하게 된다. 오는 16일로 부산항만공사 임기가 만료되는 그에게 연말까지 계획을 물었더니 ‘스페인어 공부’라는 다소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유를 묻자 “이번 선거에서 중남미 국가들이 많이 도와줬는데, 다음에 만날 때에는 스페인어로 인사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웃는다.

40여 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임 사장은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기자를 붙잡았다. “제 2, 제 3의 임기택이 하루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의 당선은 외교부, 해수부 등 관련부처들의 협업이 잘 이뤄져 거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놀란 게 있다면 우리 정부의 외교 역량이에요. 이 정도의 역량이면 다른 국제기구의 수장 자리도 쉽게 꿰찰 수 있겠다 싶었어요. IMO와 같은 국제전문기구가 17개나 됩니다. 정부는 이런 곳에 진출할 인재를 계속 발굴하고 육성해야 해요. 일본은 이미 50년 전부터 그런 작업을 진행해 왔거든요. 외교부가 컨트롤타워가 돼 범정부적 외교 역량을 결집한다면 머지않아 제2, 제3의 임기택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임기택 IMO 사무총장 당선자(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임기택 IMO사무총장 당선자는 누구?

1956년생으로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바닷가에서 포탄껍데기를 주어 고물상에다 5원씩 팔아 만화책을 봤던 개구쟁이였다.

마산고와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ROTC를 거쳐 4년 7개월 동안 외항선을 탔다. 이 때 1등 항해사 자격증도 땄다.

학구열도 높아 연세대 행정대학원과 스웨덴 말뫼 세계해사대학원에서 각각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해양대 대학원에서는 해사법 박사과정을 수료해 행정과 해사법 등에 두루 밝다.

공직생활은 1984년 해운항만청 사무관 특채로 임용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28년간 해사안전정책관과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등 해사 분야 요직을 역임했다.

IMO연락관과 IMO산하기관 의장, 주영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 등 IMO 관련 업무도 도맡았다. 부산항만공사 사장에는 2012년 7월 취임했다.

활발하고 호탕한 성품으로 선후배들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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