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찬성하는 건 아니다. 시장경제 수호를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단순히 쌍용차가 더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모진 풍파를 헤쳐 온 지금의 직원이 좋은 대우를 받고, 그보다 더 힘든 길을 걸어온 퇴직자에게 복직 기회가 늘어나는 걸 바라서다.
기자 초년생이던 2009년 8월 쌍용차 평택 공장의 77일 옥쇄 파업 막바지 현장에 갔다. 전쟁터였다. 남겨진 자, 버려진 자 모두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서로 향해 볼트 총을 쏴야 하는 모습을 지켜봤기에 지금의 이 마음은 더 각별하고 간절하다.
한때 ‘SUV 명가’로 불리던 쌍용차가 왜 이렇게 됐을까.
쌍용차는 1954년 하동환 제작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오랜 역사의 자동차 회사다. 1988년 쌍용차로 이름을 바꾼 후 코란도와 무쏘의 연이은 히트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인수된 이후 연이은 신차 실패로 고전했다. 상하이차는 결국 2009년 1월 더 이상의 경영을 포기했다.
법원은 그해 2월 법정관리를 결정했다. 또 전체 인력의 37%인 2646명의 구조조정키로 했다. 쌍용차 노사는 이후 첨예하게 대립했고 결국 5월22일 공장 점거를 시작해 8월6일 협상 타결까지 무려 77일 동안 전쟁을 방불케 하는 옥쇄 파업이 이어졌다.
그해 쌍용차의 완성차 생산량은 3만4703대. 매출액 1조668억원에 2934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도산 직전까지 갔다. 사실 기업을 해체하더라도 전혀 이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IMF 외환위기를 내버려둔 사회구조, 무책임한 중국 상하이차와 이를 매각한 채권단 대표 조흥은행, 또 이를 승인한 당국 관계자부터 실패한 차를 개발해 온 경영진까지 모두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회사의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적 고통분담 대신 강성 기조를 유지한 노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피했어야 했다. 노동계가 지금까지도 ‘쌍용차’를 정치쟁점화하는 것은 쌍용차 하나 때문만이 아니다. 모든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부정하기 위해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필요했다고 최종 결론 내렸다. 회사가 망하는 것보단 구조조정을 해서라도 살 사람은 살렸어야 한다는 의미다.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이를 만들 근로자도 필요 없다. 필요 없는 사람이 있으면 인건비 부담은 커진다. 회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쌍용차도 이 악순환에 빠졌다.
더욱이 쌍용차는 노동계가 보듯 대형 자본이 아니다. 연 매출 3조 원대, 연간 최대 생산능력 15만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중소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일 뿐이다. 악덕 기업으로 매도하기는 애처롭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해고자를 나 몰라라 하지도 않았다. 쌍용차는 아직도 적자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13년엔 455명의 무급휴직자 전원을 복직시켰다. 판매량이 늘면 2000여 희망퇴직자에 대해서도 차츰 복직시킬 계획이다. 물론 끝까지 구조조정을 거부한 165명에 대해선 이렇다 확언하지 않고 있지만.
쌍용차는 2009년 이후로도 줄곧 정리해고의 아이콘이 됐고, 한해도 쉬지 않고 정치쟁점화 됐다. 대중이 느끼는 쌍용차의 이미지는 늘 좋은 신차로서가 아니라 노사갈등의 상징으로서가 돼 버렸다. 이미지가 중요한 고관여상품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에는 치명적인 일이다.
마음이 복잡하다. 세상을 배우는 처지인 만큼 아직 ‘무엇이 옳다’는 결론을 내기 어렵다. 그저 쌍용차가 잘 돼서 근로자도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쌍용차 해고자를 응원하는 가수 이효리 씨도 배우 김의성 씨도 복잡한 논리를 따진다기보다는 이런 연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쌍용차는 오는 13일 ‘티볼리’를 내놓는다. 2009년 아픔을 딛고 처음부터 새롭게 개발한 4년 만의 첫 신차다. 반응은 나쁘지 않다. 소형 SUV는 최근 가장 잘 나가는 차급이다. 앞서 공개한 디자인과 가격, 연비에 대한 평가도 대체로 좋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응원한다.
노동계는 분명 티볼리가 공개되는 13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시위를 할 것이다. 평택 공장 굴뚝에서의 시위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들 역시 응원할 것이다. 이들도 물론 티볼리를 진심으로 응원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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