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정책도 한·일 경쟁전…선택의 문제 아냐"[만났습니다]

■우병렬 이민정책연구원 원장
"문만 열면 해외인재 몰려온다? 착각"
"일정조건 갖춰야 정착 자격 부여"
"이민자 열린 마음으로 받는 노력 필요"
  • 등록 2023-12-27 오전 5:30:00

    수정 2023-12-27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배운 성주원 기자] “이웃나라인 일본은 인구 위기를 우리보다 먼저 경험했기 때문에 더 절박하다. 일본은 이민청(출입국재류관리청)도 우리보다 먼저인 2019년에 만들었고 이민자 모시기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인 셈이다.”
우병렬 이민정책연구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이민정책연구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우병렬 이민정책연구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이민정책연구원에서 진행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법무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은 인구 위기에 대응한 이민자 유입의 사회·경제적 영향 분석, 사회통합과 국민 공감을 위한 교육 사업 추진, 이민정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법·제도 연구 등을 위해 지난 2009년 개원한 싱크탱크다. 우 원장은 지난달 1일 제5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인구 위기는 먼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닌 이미 현실화된 ‘재앙’이라는 경보가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일례로 미국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우리나라 저출생 실태를 소개하며 흑사병이 창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 때보다 한국의 인구가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해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소식을 듣자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며 경악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법대 교수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정부는 이전부터 인구 위기 대안으로 이민 활성화를 깊이 고민해왔고, 이에 발맞춘 듯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이민·이주 정책 체계화를 ‘국가백년대계’로 지목했다. 그만큼 관련 정책을 연구해온 이민정책연구원의 어깨도 덩달아 무거워지는 상황이다.

문제는 무작정 이민의 문을 열어젖힌다고 만사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해외 인재(이민자)를 선별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그런 인재들이 기꺼이 한국의 문을 두드리게 하려면 전국민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우 원장의 당부다.

우 원장은 “우리 국민은 문호를 개방하기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이민자들이 한국으로 줄지어 올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착각”이라며 “해외 인재를 불러들이기 위한 경쟁 대열에 우리도 합류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우병렬 이민정책연구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이민정책연구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우병렬 원장과의 일문일답

-새로운 이민 정책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이유는


△그동안 우리나라는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차원에 해외 노동자들을 불러와 일하게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인구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이민자를 받아 우리 사회에 통합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구 위기는 생산연령인구 부족 등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국가·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 악영향을 준다. 이제는 과거의 이민관을 버려야 한다.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고 통합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여전히 이민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진 국민이 많고, 미국과 유럽 등 이민·인종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보면서 우려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그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며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다. 더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미 30년 전부터 여러 경로로 이민자들이 유입돼왔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된 사회는 없다.

-국민적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다른 문화권 출신자라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면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희망적인 부분은 국민 의식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민자에 대해 여전히 거부감이 크지만,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이민자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적어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기성세대는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국가라는 교육을 받은 반면에 젊은 세대는 세계시민 교육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데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민 선진국들은 이민자의 학력, 나이, 소득수준, 재산 등 심사 기준을 만들어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이민을 허용하고 있다. 특히 입국 후 일정 기간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등 사회에 적응됐다고 판단될 때 영주권을 내주는 단계적 접근법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우선은 취업 등을 목적으로 한 국내 체류를 허용하되 일정 조건을 갖춘 자만 정착의 경로를 밟게 하는 단계별 이민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잘 참고해 긍정적 효과는 극대화하고 실패 사례는 답습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병렬 이민정책연구원장이 21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이민정책연구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민자를 선별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을 한가지 짚어본다면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해외 출장에 다녀온 뒤 귀띔하길, 주요 선진국 이민정책 책임자들이 가장 크게 후회하는 부분은 그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근본적으로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고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이미 들어와 있는 이민자들을 상대로 철저한 사회통합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우리말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뛰어난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가 더욱 노력해야 할 부분은

△이민자들은 이민할 나라를 고르는 데 크게 2가지를 고려한다. 첫 번째는 그 나라에서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고 우리 가족이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느냐, 두 번째는 그 나라에서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 잘 통합돼 살 수 있느냐다. 일단 경제적, 삶의 질 측면에선 이제 우리나라도 일본과 대등한 수준이라고 본다. 따라서 관건은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줄이는 것이다. 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일본 전체 인구 중 이민자 비율은 2.2%(208만명)로 현재 3.5%(180만명)인 우리보다도 적다. 우리 국민이 이민자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이민 선진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그동안 연구원은 정부가 이민청을 어떻게 설치·운영해야 하는지 심도 있게 연구해왔고, 앞으로도 이민청의 성공적 운영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또한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에 잘 통합하는 방안을 계속 연구하고 이민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도 최선을 다해 선진국에서 발생한 사회적 갈등이 우리나라에선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이다.

■우병렬 이민정책연구원장은

△1967년생 △경남고 △서울대 법과대학 학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미시간대 로스쿨 LL.M. △공주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행정고시 35회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장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국장 △제6대 강원도 경제부지사 △법무법인 태평양 외국변호사 △제5대 이민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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