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가 이러한데 국내 기관 및 기업들은 왜 손을 놓고 있을까. 그 이유는 한국에서 법인 대상 가상자산 계좌 개설이 사실상 막혀 있어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이 활발해지는 만큼 국내 투자자들의 수요도,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장 참가자들의 의지도 높은 상황. 자본시장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법인 계좌 발급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상자산 거래 계좌 못 트는 국내 기업들...뒤쳐지는 韓 가상자산 역량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개인투자자에게만 가상자산 거래 통로를 열어주고 법인 계좌 개설은 계속 막혀있는 상태”라며 “취약성이 더 높은 개인투자자에게는 열려있고, 기관들에게는 막혀 있는 건 형평성도 맞지 않다. 가상자산 시장 확대기인 지금 시점에서는 이렇게 제약을 두는 건 기회의 측면에서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법인의 가상자산 계좌 개설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는 않으나, 한때 드리웠던 ‘금지의 그림자’가 시장에 잔존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말 정부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을 통해 국내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매입·담보취득·지분투자를 일체 금지하는 지침을 제시한 이후 그 기조가 암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 국내에 체계나 기반이 다소 미비한 상황이었기에 급하게 임시 조치를 통해 막아뒀던 셈이다. 지난 2021년부터 시행된 가상자산 사업자 규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도 법인 계좌 개설 금지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국내 은행들은 6년 전 임시조치의 눈치를 보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해외 IB들은 이미 가상자산 시장에 최초 상품을 쏟아내면서 경쟁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된 이후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가상자산 관련 1호 상품이 늘어나고 있다”며 “미국에서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대형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ETF를 허가해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금융은 특히 ‘선점효과’가 강한 영역이다. 왜 가상자산 시장에서 국내 금융사가 1호 상품을 만들면 안되나”며 “국내 법인의 투자가 막힌 상황에서는 해외에서 가상자산 기반 상품이 쏟아져도 국내 금융사는 투자할 수가 없고, 하려고 해도 해외로 나가서 간접적으로나 시도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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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도 제도권 편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증권형토큰(STO) 사업 기반 마련에는 법인들에 대한 가상자산 계좌 개설 허용이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해 지급결제 기능을 수행하는 가상자산 거래가 가능하려면 일단 금융회사를 비롯한 일반 법인들도 가상자산을 매입하고 거래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며 “결국 법인의 가상자산 취득 경로인 계좌가 열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인에 가상자산 계좌를 허용하는 것에 따른 리스크관리가 우려될 경우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모든 회사에 처음부터 다 열어주는 방향이 쉽지 않다면 최소한 투자자보호 장치를 갖춘 금융기관 및 관계사를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계좌발급을 열어주는 방향도 있다”며 “이제는 글로벌 트렌드를 감안해서라도 가상자산에 대한 판단을 금융사가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관련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게 해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