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고성과 야유가 오가던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수와 환호가 나왔습니다. 기립박수를 치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여야에선 “큰 울림을 줬다”(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의회정치 복원 과제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라며 치켜세우는 말이 잇따랐습니다.
때는 지난 14일 교육·사회·문화 분야에 대한 대정부질문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발언 순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날 대정부질문 두 번째 발언자로 나선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 김예지 의원은 “장애인 당사자이자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장애인 학대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위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과 실효성 있는 장애인 정책을 위한 예산 확대를 주제로 대정부질문을 하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7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에 관한 대정부 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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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발달장애인은 가끔 피해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신고하기 어려워 보통 공익단체나 기관의 고발을 통해 수사가 시작되는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결과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없어지는 바람에 경찰이 불송치 결정할 경우 학대 사실 자체가 영원히 미궁으로 사라지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권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길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어 김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장애계가 요구하는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을 언급하면서 “장애인에게 편한 사회는 모두에게 편한 사회”라며 “윤석열 정부의 약자 복지의 핵심인 장애인 정책을 살펴봐주길 간곡히 부탁드리겠다”고 당부했습니다.
김 의원은 질의하는 동안 발언 중간중간 점자로 된 원고를 읽으며 정부에 장애인 정책 개선을 차분하게 촉구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진 않았지만 장애인 학대 피의자 42% 집행유예 선고, 4년간 한 번도 활용되지 않은 형사소송 보조인 제도, 보건복지부 소관에 80% 편중된 장애인 관련 예산 등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며 설득했습니다.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그의 마무리 발언이었습니다. 김 의원은 “‘코이’라는 물고기는 작은 어항 속에선 10㎝를 넘지 않지만 강물에선 1m가 넘게 자라난다”며 “아직도 우리 사회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기회와 가능성, 성장을 가로막는 다양한 어항과 수족관이 있다. 국민이 기회의 균등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강물이 돼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7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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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의원의 질의는 장애인을 대변하는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당연히 던질 수 있는, 논리적 문제 제기였고 그 태도 역시 지극히 상식적이었습니다. 크게 특출날 것 없던 그의 발언이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동안 국회가 보여준 모습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회 상임위원회보다 주목도가 높은 대정부질문에선 무리수가 많이 나오기 마련이었습니다. 이번 대정부질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연로한 분한테 드시게 하면 안 되니까 총리의 직계가족과 같이 드시면 어떻겠느냐”(윤재갑 민주당 의원)는 조롱 섞인 지적이 논란이 됐습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덕수 총리를 두고 “면박 준 대상이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고 주장했고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 “3일간 고압적 자세와 윽박 지르기로 일관한 것이 누구인가. 어설픈 젠더 갈라치기”라고 강하게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터 당연한 행동이 칭찬받는 국회가 됐을까요. 고성을 지르지 않아도 정부 책임자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발언 내용도 주목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예지 의원의 이번 발언이 한 번 주목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장애인 정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면 국회 문화가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속도도 더욱 빨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