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광복절에 경남 밀양에 사는 13살 소년이 자신이 만든 친일카페에 태극기를 불태운 사진을 내걸었다. 이 아이는 “독립운동가들은 조센진들의 광복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연합군이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을 포기하게 한 결과 탓이다”라는 글도 올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친일카페는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열등한 한국은 역사날조를 하고 일본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태도를 보인다” “일본은 미개한 조센진에 근대화를 이룩해주는 아량을 폈다”는 등의 글을 게재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그릇된 역사관이 스멀스멀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돈만 좇으며 앞만 보고 가는 사이 암세포처럼 음지를 파고 들었다. 요상한 단체들이 생겨나고, 해괴한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제가 우리의 근대화를 도왔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용납이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수단의 정당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이런 망측한 논리가 제대로 단죄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태극기를 불태우는 13살 소년이 탄생한 것이 비단 가정과 학교의 인성 교육만의 문제일까. 여전히 우리 사회 지도층에는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인사 청문회 대상이 된 자들 중 친일 논란에 휩싸인 자들도 있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심지어 독립군 토벌대에서 활동했던 자를 공영방송이 다큐멘터리로 미화한데 이어, 내년에는 정부가 혈세를 들여 뮤지컬까지 만들 것이라고 하니 이 무슨 괴이한 짓거리인가. 친일 청산의 과거사를 이루지 못한 전례가 켜켜이 쌓이다 보니 이런 치욕적인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에 대해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자들이 흔히 쓰는 단어가 ‘미래’다. 그러나 미래라는 것은 올바른 과거가 세워진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과거가 불안한 자는 미래도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이제라도 올바른 과거를 세워야 한다. 방치한다면 제2, 제3의 13살 소년은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