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계좌 사용 허락, 불법행위 예견 어려워…손배 판단 신중해야"

동창에 계좌사용 허락…공동불법행위 책임 쟁점
대법 "과실에 의한 방조 책임, 신중히 판단해야"
피고 패소 부분 파기…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
  • 등록 2024-09-01 오전 9:00:02

    수정 2024-09-01 오전 9:00:02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다른 사람에게 계좌 사용을 허락한 행위만으로는 불법행위에 대한 예견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타인의 계좌 사용을 허락하는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의 범위가 보다 명확해졌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원고 A씨가 피고 C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소송에서 원고가 일부 승소한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했다고 1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7월부터 2021년 7월까지 B씨 명의의 D주식회사 계좌로 1억2000만원을 송금했다. A씨는 B씨의 고교 동창인 C씨가 해외 선물거래 투자를 통해 원금을 보장하고 매월 2%의 이자를 약속했다며 이에 속아 돈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씨는 사기 혐의로 고소된 후 소재불명 상태가 됐고, A씨는 B씨를 상대로 대여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주위적 청구로 대여금 청구 소송을, 예비적 청구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 쟁점은 C씨의 기망행위에 대한 B씨의 공동불법행위자 인정 여부였다.

1·2심 재판부는 “B씨가 C씨에게 자신의 계좌 사용을 허락하고 접근매체를 제공한 것이 C씨의 불법행위를 방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피고 B씨가 원고 A씨에게 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과실에 의한 방조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며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은 B씨가 C씨에게 계좌 사용을 허락한 이후 이용 현황을 확인하지 않은 점만으로는 주의의무 위반을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B씨와 C씨가 30년 이상 알고 지낸 동창 관계이고, 2021년 말까지 계좌 사용과 관련해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점 등을 고려했다.

특히 대법원은 “B씨가 계좌 관련 접근매체를 양도함으로써 C씨의 입출금 및 주식투자 거래가 이뤄지리라는 것을 넘어서, 투자 사기와 같은 불법행위가 이뤄진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B씨가 A씨에게 공동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공동불법행위책임 내지 불법행위와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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