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타임즈(FT)는 최근 ‘코로나19가 스마트폰에 미치는 문제’라는 기사에서 구미산업단지(구미산단)를 “21세기 글로벌 공급망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장소”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FT가 구미산단이 주목한 이유는 삼성· LG의 공장들이 구미산단에 몰려 있어서다. 전 세계 IT생태계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 스마트폰 공급망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전세계 스마트폰 핵심 부품·반도체 韓의존도 절대적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15일만에 다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구미산단 가동 중단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미산단은 글로벌 IT생태계의 핵심 축이다.
삼성은 구미산단에서 프리미엄 모델인 갤럭시20과 노트10를 만든다. 삼성 스마트폰 사업 총 매출의 47%인 862억달러가 여기서 발생한다.
LG는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 공장이 구미산단에 있다. 삼성과 LG 두 축을 중심으로 이곳에 부품 등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이 모여서 스마트폰 생산을 위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생산한 부품들은 삼성과 LG의 스마트폰에만 들어가지 않는다.
애플은 아이폰X와 아이폰11프로에 삼성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패널을, 화웨이의 고급형 모델도 삼성 패널을 사용한다. 구글 픽셀폰과 아이폰의 카메라 모듈, 애플워치의 패널은 LG가 만든다. IHS 마킷에 따르면 OLED 시장에서 삼성과 LG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94%에 달한다.
삼성은 한 달에 40만장 이상의 OLED 패널을 생산한다. 각 시트는 200개로 쪼개져 약 1억 1000만개의 스마트폰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만약 오염물질이 클린룸(무균실)에 들어가면 최대 3일 이상 작동이 중단되고 생산조건을 최적화하는 데에는 최대 일주일이 소요될 수 있다. 한번 공장이 멈춘다는 것은 일주일 동안 약 2000만개의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인터넷 서버 등에 들어가는 전세계 D램의 75%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만든다. 이 중 80%가 중국의 조립공장으로 수출돼 완성품이 된 후, 전 세계에 공급된다. 대만, 일본, 베트남 역시 한국에서 반도체를 수입한다. 한국에서 반도체 생산이 중단될 경우, 이들 수천개 공장 역시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다.
삼성과 SK하이닉스 공장은 대부분 경기도에 집중돼 있다. 지난 15일 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 직원이 재빠르게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회사는 물론, 생산라인에 차질은 없었지만 언제든 코로나19 감염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여전하다.
코로나19에 여행 대신 게임…반도체·디스플레이 수요 급증
가장 큰 문제는 전세계 IT업체들이 한국의 구미·경기도 공장 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를 만드는 데 약 30억달러가 필요하다. 경기도에는 20개 이상의 생산라인과 이를 축으로 수백여 협력사들이 모여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하루 이틀 노력한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한국인의 입국제한하는 국가들은 늘어나고 있다. 20일 기준 한국인 입국 제한 국가는 총 174개다.
한국을 오가는 항공편도 지연·중단되면서 원자재 수입과 완성품 수출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울러 디스플레이 판넬은 재고를 거의 쌓아두지 않는 ‘린 생산방식’으로 제조하고 있어 당장 재고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기술 의존도가 높은 상품들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회사 대신 집에서 일하고 여행을 가는 대신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급증하는 트래픽 수요는 데이터센터들의 반도체 수요를 키우고 있다.
언제든지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와 수요 증가가 겹치며 2월 서버에 들어가는 반도체 가격은 3년 만에 처음으로 두자릿수 상승률(10%)을 보였다. FT에 따르면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지난 1월부터 공급보다 수요가 20% 초과된 상태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생산 라인을 조절하며 주문량에 대응하려고 하고 있다.
FT는 “소비자는 깨진 스마트폰 화면을 수리하는 데 몇 달이 걸릴 수 있으며 스마트폰이나 TV 등의 새로운 모델의 출시는 지연될 수 있다”며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